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최금진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십만 년전에

나는 원숭이 비슷한 우리 할아버지 고환에 담겨

말하는 꽃도 보고 텔레파시 하는 뱀도 보고

어멈들이 어, 하면 아범들은 아, 하고 움막에 들어가

낮이고 밤이고 인류를 길어 올려 흘려보냈겠지

내 본향이 아프리카라 생각하니

평소 안 좋아하던 파프리카도

적도에 걸린 생소한 탄자니아, 소말리아가 예뻐 보인다

나는 얼마나 멀리 흘러온 건가

얼굴 시커먼 우리 할아버지는 긴 막대기랑 돌덩이 서너 개 들고

얼마나 오래 걸어 전라남도 화순에 와서 화순 최 씨가 되었던 걸까

내 이름을 스와힐리어로는 뭐라 할까

우리는 형제니까

아동복지기금도 내고 기아 난민도 돕고

아프리카에 호적을 두었으니

나도 늙으면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어쩌면 신께서 철조망을 쳐놓은 성경의 에덴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십만 년도 더 먹은 우리 할머니가

축 늘어진 가슴을 출렁이며 날 알아보고는

다 늙은 나를 무릎에 눕히고 자장가를 불러줄까

이 세상에 없는 새의 언어로, 나무의 모국어로

아프리카, 아프리카, 너무 늙은 나를 안고 안타까워하여 주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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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긴 시로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최금진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기원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인류의 거대한 가계도를 상상하고 있네요. 지금 한 사람의 화순 최 씨가 되기까지 인류는 얼마나 먼 길을 걸어온 것일까, 시인은 지금 그 길을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존재하게 된 그 먼 길을 돌아보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먼 길 끝의 할머니가 자신을 안고 안타까워하는지를 묻는 일은 자신의 삶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지요. 우리도 화순 최 씨와 여행을 같이 한 사람들입니다. 20만 년이나 걸어온 자신이 제대로 자라온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입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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