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에서 허준 선생이 거머리로 조선시대 신성군의 창병(피부가 헐고 곪는 질환)을 치료하는 장면이 등장한 적이 있다. 왕자를 치료하는 데 거머리 같은 미물을 사용한다며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지만 허준 선생이 깨끗이 병을 고쳐내자 모든 사람의 감탄을 샀다. 거머리는 조선시대 때는 선조의 넷째 아들인 신성군을 살렸고, 오늘날에는 미세수술 분야에서 최첨단 의학장비보다 훨씬 정교한 일을 해내고 있다. 의료용 거머리(Hirudo medicinalis)는 수술 성공률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손가락 절단시 정맥은 봉합 안돼
상수도를 통해 나온 깨끗한 물은 무언가를 깨끗하게 만든 뒤 하수도를 통해 빠져나간다. 옷과 기계들을 씻은 뒤 더러워진 물이 어디론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있으면 결국 썩게 된다. 고인 물만 썩는 것은 아니다. 피도 마찬가지다.
심장과 폐의 합동 작전으로 분당 70차례 정도 산소와 영양분을 갖춘 동맥 피가 혈관을 통해 뇌와 장기,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간다. 조직에 필요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한 피는 정맥 혈관을 타고 다시 심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처럼 순환하면서 계속해서 우리 몸에는 깨끗한 피들이 돌고 있는 것이다. 산소와 영양분을 이미 공급한 정맥 피가 조직에 고여 있으면 그 자체로 독이 돼 조직을 죽게 한다. 만약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될까?
산업현장뿐 아니라 집에서도 손가락 끝이 절단되는 사고는 비일비재하다. 취미생활을 하다가 도구에 잘리기도 하고, 강한 바람에 문이 갑자기 닫히면서 손가락 끝이 뭉개져서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이럴 때 운이 좋으면 지름 1㎜도 채 안 되는 미세 동맥을 찾아서 수술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는 실로 봉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맥은 불가능하다.
손가락 끝에 피를 들어오게 하는 동맥은 붙일 수 있지만 피를 내보내는 하수도 역할을 하는 정맥은 안 된다. 정맥은 혈관 내 압력이 강하지 않아 물에 젖은 창호지처럼 전혀 힘이 없고 너무 가늘어서 수술현미경으로도 봉합이 불가능하다.
◆정맥 역할 대신하는 거머리
이럴 때 바로 거머리가 필요하다. 거머리의 입안에 있는 침(타액)에는 3가지 중요한 성분이 포함돼 있다. 먼저 마취 성분은 피를 빨고 있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또 한 번에 주위 조직으로부터 많은 피를 빨아먹을 수 있도록 혈관을 확장시키는 히스타민이 녹아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항응고, 즉 피를 멎지 않게 하는 히루딘이 포함돼 있다.
동맥을 연결하고 피부를 봉합한 뒤 피부에 작은 절개를 하거나 피부 일부를 벗겨 피를 나게 하고 바로 거기에 거머리를 붙인다. 한 번 상처에 붙으면 보통 30분 정도 상처 부위에서 약 10~20cc 정도의 피를 먹는다. 이 시간 동안 거머리의 입에 있는 히루딘이 상처 부위에 남아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고, 7~8시간 정도 지속적으로 피를 바깥으로 흘러나오게 한다.
동맥피가 절단된 손가락 끝으로 계속해 들어오면서 5~10일 정도 의학용 거머리를 이용해 정맥피가 몸 밖으로 흘러나가게 되면 신비롭게도 절단면에 새로운 정맥 혈관이 연결된다. 절단된 손가락이 새롭고도 완전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일반 거머리는 절대 사용 불가
물론 거머리가 아니어도 방법은 있다. 새 정맥 핏줄이 생길 때까지 하루 종일 누군가 환자 옆에 붙어 앉아 30분마다 항응고제를 묻힌 면봉으로 손가락 끝 부위를 긁으면 된다. 그러나 그야말로 중노동이고 인력과 시간 낭비다.
거머리가 현대의학에 이용되는 사례는 손가락 미세수술 외에도 많다. ▷귀나 입술이 절단된 경우 ▷살이나 신경, 뼈를 옮겨 재건 수술을 하는 유리 피판술 등 모든 미세재건수술에 이용된다. 최근에는 류마티스 관절염과 골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관절을 둘러싼 근육의 통증 부위에 거머리에게 피를 빨게 한 결과, 통증이 줄고 운동범위가 넓어졌다는 보고도 있다.
수부외과 전문병원인 더블유(W)병원 우상현 병원장은 "의료용으로 배양되지 않은 거머리를 집에서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며 "멸균처리되지 않은 거머리는 극히 위험하며, 감염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항생제도 처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제공=더블유(W)병원 수부외과 의학박사 우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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