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with라이온즈열정의30년] (35)외국인 선수 (상) 제이 데이비스와 맞바꾼 빌리 홀

잘못된 용병 선택, 7년동안 땅친 사연은…

1999년 삼성에서 뛴 찰스 스미스(오른쪽)와 빌리 홀.
1999년 삼성에서 뛴 찰스 스미스(오른쪽)와 빌리 홀.
국내 프로야구 1호 외국인 선수들이 1998년 개막에 앞서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LG 앤더슨, 삼성 베이커
국내 프로야구 1호 외국인 선수들이 1998년 개막에 앞서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LG 앤더슨, 삼성 베이커'파라, 두산 캐세레스'우즈. 삼성 라이온즈 제공

1999년 삼성 라이온즈는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보며 땅을 쳤다. 이승엽이 5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 신기록을 세우는 경사에도 한숨을 내쉰 이유는 바로 외국인 선수 때문이었다.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 외국인 선수가 첫선을 보인 건 1998년. "국내 선수의 설 자리를 뺏는다", "선진야구 접목으로 야구발전을 이끈다"는 찬반 속에 외국인 선수에 대한 문호 개방이 이뤄졌고,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한 팀당 2명씩의 선수가 국내 그라운드를 밟게 됐다.

삼성은 호세 파라, 스콧 베이커 등 2명의 투수를 선택했다. 빠른 볼을 가진 파라는 불안한 삼성의 뒷문을 책임졌고, 왼손투수 베이커는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다. 도미니카 출신의 파라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말썽을 피우거나 구단에 별스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60경기에 나서 7승8패19세이브(5위), 평균자책점 3.67로 그의 성격만큼 무난한 시즌을 보냈다. 구종이 단순했으나 150km의 빠른 직구는 위력적이었다. 시즌을 끝냈을 때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삼성 구단으로 트레이드 의사를 타진해왔고, 파라도 일본서 뛰기를 원했다. 삼성은 현금 8만5천달러를 받고 그를 요미우리로 보냈다. 외국인 선수를 수출한 1호 사례가 됐다.

베이커는 파라와는 달랐다. 애초 그에게 거는 기대도 파라와는 차이가 났다. 그런데 선발로 나선 베이커가 그해 26경기서 15승7패 평균자책점 4.13(다승 3위)의 빼어난 실력을 뽐내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베이커는 성적을 내자 구단에 각종 요구를 쏟아냈다. 그가 저지르고 다니는 말썽 때문에 구단은 골치가 아팠다. 삼성구단 관계자는 "사고뭉치였다. 사생활 문제로 아파트 주민의 항의를 받아야 했고, 클럽하우스 도난 사건 등 그가 있는 곳엔 늘 말썽이 일었다"고 했다.

삼성은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베이커에게 구단 지정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게 했지만 그는 무리한 연봉을 요구하며 버티다 재계약 포기 통보를 받았다. 삼성은 이미 문란한 사생활 등을 이유로 베이커의 퇴출을 사실상 결정한 상태였다.

삼성의 외국인 선수 역사서 가장 뼈아픈 실수는 이듬해인 1999년 발생했다. 트라이아웃 전날, 삼성은 이승엽과 중심타선을 이룰 재목으로 찰스 스미스를 1순위로 내정하면서 2순위에는 외야수 제이 데이비스를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그 결정은 하루아침에 바뀌었고, 삼성은 시즌 내내, 아니 그 후로도 한참 후회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트라이아웃 기간, 평가전을 보러 간 삼성 서정환 감독은 발이 빠르고, 타격에 소질을 보인 뜻밖의 선수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빌리 홀이었다. 그는 평가전서 무서운 타격감을 선보였다. 서 감독은 타격과 주루에 빼어난 실력을 보여준 홀을 내야 강화라는 명분으로 최종 낙점했다.

전지훈련, 시범경기, 시즌 초반까지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해 구단에 퇴출 고민까지 안긴 스미스는 다행히 5월 들어 첫 홈런을 때려낸 뒤 무섭게 방망이를 휘둘러 그해 40개 홈런(3위)에 타율 0.287로 제 몫을 다해줬다. 그러나 홀은 1번 타자, 유격수로 경기에 나섰지만, 시즌 타율은 0.244(4홈런)로 기대 이하였다. 수비도 엉성해 나중에는 외야로 보직을 옮겨야 했다. 다만 47개의 도루에 성공, 전체 2위에 올랐으나 출루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반면 삼성이 마지막 순간 이름을 바꾸면서 한화로 간 데이비스는 연일 맹타를 휘둘렀다. 그해 30개의 홈런을 쳐냈고 172개의 안타를 쳐내 전체 3위에 올랐다. 타율 0.328(8위), 35개의 도루(5위), 106타점(8위), 93득점(9위) 등 공격 여러 방면에서 맹활약한 데이비스는 호타준족의 상징인 '30-30클럽'을 달성한 최초의 외국인 선수가 되면서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주역이 됐다.

삼성은 데이비스가 홈런을 치고 난 뒤 경례 세리머니를 할 때마다 홀 이야기를 꺼내며 그 순간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한탄했다.

데이비스는 1999년 국내 무대에 연착륙했고, 2003년 잠시 멕시코리그로 활약하느라 공백이 있었지만 2006년까지 한화서 7시즌을 뛰면서 평균타율 0.313, 홈런 167개, 도루 108개의 기록을 남겼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반열에 올라 있는 데이비스는 외국인 선수 최다안타'최다타점(1천979개 안타, 591개 타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99년 삼성 매니저였던 홍준학 기획부장은 "외국인 선수 도입 초기만 해도 선수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실력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사생활 관리도 허술한 점이 많았다. 기대를 품고 데려온 스미스와 홀이 시즌 초반 한국무대에 적응하지 못해 실망만 안기자 자극을 주려 (원래는 독방을 줬어야 했으나) 둘이 함께 방을 쓰게 했다. 뚱뚱한 스미스와 빼빼 마른 홀은 그래도 불만 없이 생활했다. 나중에 홈런을 쳐내며 실력을 인정받은 스미스가 불편하니 혼자 방을 쓸 수 없겠느냐며 조심스럽게 물어와 흔쾌히 요구를 들어줬던 기억이 난다. 프로는 결국 실력으로 대접받는 것, 그것은 국내 선수나 외국인 선수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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