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들어오셨다. 얘들아 밥 먹자!"
어머니께서 마당이 떠나가라 우리를 부르신다. 8남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잽싸게 밥상머리에 앉는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셔야 저녁상을 차리셨다. 아버지께서는 8남매가 한 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면 "맛있는 것은 나누어 먹어라"그 한마디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심어 주셨다.
학교폭력으로 한참 어려웠던 지난 2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삶쓰기 공책(일기 형식)을 보고 참으로 안타까웠다. '부모님은 나를 공부하는 기계로만 알고 계신다. 나는 꿈이 뭔지 모른다. 아직도 아빠는 들어오시지 않았다. 지금 10시 30분, 이 밤도 나는 거지 같은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이 학생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빠가 일찍 들어오셨더라면… 거지 같은 공부라고 표현했을까… 부모님은 이 아이의 마음을 알고 계실까… 혼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옛날 어둑어둑해지면 하던 밭일을 멈추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셨다는 아버지 말씀이 그립다. "얘들아 밥 먹자!" 당연하면서 너무나 평범한 이 한마디가 어쩌면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고, 듣고 싶은 말은 아닐까.
정부는 2006년부터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정시 퇴근을 권장해 왔다. 대구시교육청에서는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하여 매주 수요일 '가족사랑의 날'을 실천하고 있다. 부모님이 직장에서 일주일의 하루만이라도 일찍 퇴근하여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고3을 제외한 학생들도 학교에서 수요일만은 6시 전에 하교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가족사랑의 날은 우리 선조들의 밥상머리교육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가족애와 인성을 키우는 날'을 통해 공부는 왜 해야 하고, 부모님께서 늦게 퇴근하는 이유를 적어도 아이 입장에서 이해하기를 바란다. 자녀의 행복한 삶을 위한 부모의 고민은 책상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밥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녀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 직장이나 학원이 아니라 어쩌면 가족의 눈을 맞추며 함께 뜨는 밥 한 숟가락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과 학생들의 생명경시 풍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가정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각자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 지금은 조금 불행하더라도 나중의 행복을 위한다는 이유로 가족식사는 물론이고 자녀의 고민, 가족의 행복까지 저당잡히지는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부모가 나서서 밥상머리교육을 실천할 때다. 가족사랑의 날과 같이 가족끼리 약속을 정하여 식사시간을 확보한 후 하루 일과를 서로 나누는 대화를 통해 행복하고 즐거운 가족식사가 되도록 노력하자. 서로 대화를 할 때는 아이의 말을 중간에 끊지 말고 끝까지 경청하며, 부정적인 말은 되도록 피하고 '역시' '그래' 등의 공감과 칭찬을 많이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식의 열린 질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족 속으로 들어가자. 물론 TV와 컴퓨터는 끄고 말이다. 밥의 힘은 건강한 가족 문화를 만들어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의 기운이 학교폭력, 학력 비관, 친구 및 가정문제 등으로 위기에 내몰린 학생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게 되길 바란다.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밥상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하면 온 세상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감사와 존경, 효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제철인 5월이다. '애들아, 밥 먹자!'라는 말이 위기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울림이 되길 바란다.
겨울을 견디고 온 봄나물이 맛있을 때다. 사랑이라는 양념을 들고 퇴근길에 나선다.
우동기/대구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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