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통합진보당의 진실, 대중은 안다

영국 어느 소시장에서 소의 무게를 알아맞히는 대회가 열렸다. 무대에 올려져 있는 살진 소 한 마리를 도축하여 손질하였을 때 그 무게가 얼마냐를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관중들은 6펜스짜리 티켓을 사서 이름과 주소 그리고 추정 무게를 적어냈다. 내기 참가자는 800명에 달했다. 참가자 중에는 푸줏간에서 소고기를 만지는 사람도 있었고, 농부도 있었으나 대부분 소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가장 근접한 수치를 적어낸 사람이 상금을 타게 되어 있었다.

현장에 있던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프랜시스 골튼은 '대중의 무지'를 밝히고 싶었다. 그래서 게임이 끝났을 때 내기 진행자로부터 티켓을 넘겨받아 통계를 내보았다. 내기 참가자 787명(판독이 어려운 13장 제외)이 써낸 추정치를 더해서 참가자 수로 나눴다. 골튼은 잡다한 사람들이 뒤섞여서 내기를 했으니 반드시 잘못된 평균치가 나오리라 짐작했다. 집계 결과, 골튼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기 참가자들은 손질된 상태에서 소의 무게가 1천197파운드가 될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실제 소 무게는 1천198파운드였다. 아무 기준도 없이 모인 내기 참가자들의 평균 추정치가 소 무게를 완벽하게 맞힌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했는데 딱 들어맞는 것, 이것이 바로 '대중의 지혜'다. 이런 '대중의 지혜'는 퀴즈쇼에서 잘 드러난다. '백만장자가 되길 원하십니까?'라는 미국 퀴즈쇼가 있다. 이 퀴즈쇼의 참가자가 답을 잘 모르면 똑똑한 전문가나 방청객에게 답을 물어볼 수 있다. 그런데 분석 결과 전문가가 정답을 맞힐 확률은 65%, 할 일이 없어서 주말에 스튜디오에 나온 다수의 방청객들이 정답을 고를 확률은 91%로 집계됐다. 방청객들이 올린 높은 정답률은 프랜시스 골튼이 발견한 '대중의 지혜'와 맥락을 같이한다.

아무 기준도 없이 모인 대중의 판단이 완벽하게 정답을 찾아내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비슷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능력과 관심사가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한 표씩 행사한다. 소의 무게를 맞힌 것처럼 유권자들도 정치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며,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고 있다. 이런 대중의 지혜를 가장 무섭게 여겨야 할 정당은 현재로서는 통합진보당이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4'11 총선에서 5석에 불과하던 의석을 무려 13석으로 늘렸다. 진보 가치를 구현하려는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 순식간에 제3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4년간 180억 원을 지원받게 되었다. 그런 통합진보당이 당 안팎의 불법 선거 의혹을 받으며 추락하고 있다. 재야 원로들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보여준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재창당 수준의 진보 정당 재구성을 요구했다. "통합진보당은 참담하다. 통합진보당 내 경선 과정의 문제점도 그렇지만,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폐습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의혹은 이제 당 울타리 너머까지 번지고 있다. 당내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의 부실, 부정의혹에 이어 민주통합당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불법 여론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인천지부 모 간부가 8일 중앙선관위에 접수한 조사 의뢰서에는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일반 및 단기 전화 500~1천 대씩을 설치, 후보 단일화를 위한 전화 여론조사에 대비했다"고 적혀 있다. 일명 '전화번호 따오기'로 불리는 신규 전화 대량 설치는 대표적인 여론 조작 방법으로 중앙선관위가 내용 보완을 요청해 둔 상태다.

부정'부실 선거의 책임을 지고 비례대표 3명 전원이 사퇴하라는 지적에도 경북 여성 농민 출신인 윤금순 비례대표 1번 당선자만 사퇴했을 뿐 2번 이석기, 3번 김재연 당선자는 버티고 있다. '제2의 이정희'로 불리는 김재연 당선자에게 한국외대 후배가 보낸 편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누가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례대표 선출 과정이 떳떳하고 공정하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진보 정당의 도덕성과 미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는데 나(김재연)는 결백하다고만 강변합니다. 너무 속상하고 부끄럽습니다."

대중은 다 알고 있는 진실을 통합진보당이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면 미래는 없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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