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최고의 선물/오월의신부/ 형/ 빗방울

♥수필1-최고의 선물

이질녀 영아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 주말에 시간 있으세요.""그럼 애들이 다 커버리니 남는 건 시간뿐이다.""네 알겠어요. 이모!" 왜 묻는지 이유도 묻기 전에 전화를 끊어 버린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번 토요일 오후 7시에 봉산문화회관 정문에서 남편이랑 같이 만나서 연극을 보잔다. 할 일없이 주말을 보내던 우린 대중교통을 이용해 약속장소로 갔다. 도착하고 보니 친정식구들이 다 와있었다. 반가움에 웃음소리로 공연장이 떠나갈 듯했다. 한 장씩 나눠주는 티켓은 애환이 담겨 있는 '왕초품바'였다. 친정식구들 모두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남편은 관중들 앞에서 춤을 추어야 했고 어색한 행동에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되어갔다. 공연이 무르익어갈 쯤 엄마는 옛날 살아오신 생각들이 나시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왕초품바 주인공은 다시 남편을 불러내 무대에 세웠고 아까와는 달리 완벽하게 잘 따라했다. 이 광경을 보던 엄마는 사위가 잘해 보였던지 박장대소하셨다. 나도 덩달아 박수를 쳤고 수고했다면서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는 왕초품바 주인공의 익살스런 행동에 다시 배꼽을 잡았다. 그런데 감사하다며 온천티켓 두 장도 건넨다. 배 아프도록 웃고 덤으로 온천티켓까지 받아 돌아오는 길은 미소가 지속되었다.

식구들이 다모여 연극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만들어준 사랑하는 '영아'. 월급쟁이인 네가 이모도 생각 못했던 시간을 마련하느라 지갑이 텅 비어 버린 건 아닌지. 아무튼 덕분에 많이 웃었고 온천에 갈 일만 남았다. 어버이날 선물로 최고였고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 지갑이 배고프다고 보채기 전에 놀러와. 이모가 채워줄게.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수필2-오월의 신부

막내가 결혼을 앞두었다. 아이는 좋다고 마냥 들떠 있는데 내 마음은 한동안 어수선했다. 예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던 거다. 아이는 그냥 적당히 하면 되노라고 무사태평인데, 여식을 둔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여기저기 전화해 귀동냥도 얻고 이리저리 통장을 펼쳐 들고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열심히 안 살아온 것도 아닌데 괜히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그저 남들 하는 정도로 구색이나 맞추려는 건데 뭐가 그리 복잡하고 분주했던 것인지. 허리가 휘겠다는 표현밖엔 달리 생각이 나질 않을 정도의 혼수 시장 분위기에, 나는 새삼 놀라고 괜히 쪼그라들기도 했다. 요즘엔 이 정도는 해가야 혼수 문제로 뒤탈이 없다는 점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도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었다.

법구경에는 사랑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고,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는 것이다. 속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어찌 번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결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찌 보면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미운 사람을 동시에 갖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해도 괴롭고 미워도 괴로운 일상이 이어지는 것이 결혼일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혼수란 좋은 세간을 준비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휘황찬란한 예단과 혼수를 많이 싸 보내는 것보다, 삶과 관계의 지혜를 준비해 보냄이 결혼의 진정한 의례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이 결혼을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대신에 지금껏 내가 살아온 날들의 깨달음을 한가득 아이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유난히도 결혼이 많은 오월에 내 아이도 신부가 된다. 결혼을 통해 일생의 동행을, 새로운 가족을, 또한 모든 타인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살아가는 참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도 참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이제 곧 우리 집은 새 가족을 맞을 것이다. 결혼은 가족 하나를 집 밖으로 내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식구를 더 가슴으로 들이는 일일 것이다. 나와 아이를 품이 너른 참 사람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시간의 방문을 기다린다.

최순옥(대구 수성구 범어동)

♥시1-형(兄)

나에겐 형이

한 명 있다

부모 같은 형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린 나를 위해

자전거로 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도 하고

여수 애양병원으로

서울의 유명한 한의원으로

백방(百方)으로 노력한 형

그때 불러 보고

한 번도 부른 적 없는 친근한 그 이름

어른이 되어 불러본다.

응가!

정말 고맙다

※'응가'는 형을 뜻하는 경상도 지리산 지방의 사투리

최영환(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시2-빗방울

하늘이 두터워지고

구름 사이로 뚝뚝 서며 나오는

빗방울이 깨어질까봐 조심스러워

넓은 손을 받쳐 든다.

저 토란 잎 좀 보소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면서

손이 적음을 원망하고

욕심껏 받은 빗방울에 힘겨워 토해내고

또, 받기를 거절하지 않는다.

땅에 떨어져 깨지는

빗방울을 아쉬워하면서

자라나는 또 다른 잎의 넓이를 한 뼘 재 본다.

토란잎 밑의 청개구리는

일 년 내내 구름 덮인 날 이라고

투정을 부린다.

여관구(경산시 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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