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많이 쓰는 유행어가 '대박'이다. '단번에 큰돈을 벌다' '흥행에 크게 성공하다'는 뜻으로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단어가 돼 버렸다. '대박 나세요' '대박입니다' '완전 대박' '초대박'….
하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게 되는 '정직한 세상'에서는 대박은 바람직하지 않은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로또 대박' '주식 대박' 등 땀의 대가보다 요행수에 근거한 대박을 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박' 분위기에 편승해 생활 전반에 '복불복 신드롬'이 나타나고 있다. 복불복(福不福)은 복분(福分)의 좋고 좋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이다. TV 프로그램에 복불복 코너가 잇따라 생겨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자판기에도 복불복 콘셉트가 끼어들고 있다.
'복불복'이 사행심이나 한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단조로운 삶에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흥미 위주의 복불복 게임은 한순간 재미를 줄 수 있다. '복불복'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도시철역 자판기, 키즈카페에도 '복불복'
권상군(38'회사원) 씨는 이달 초 대구도시철도 2호선 두류역에서 놀라운 자판기를 발견했다. 목이 말라 뭔가 마실 것을 찾던 중 자판기를 발견했다. 자판기에 돈을 넣었다. 그런데 '앗! 이건 뭐야?' 자판기 선택 버튼에 '복불복 버튼 자판칸'이 2칸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700원을 넣고 복불복 버튼을 눌렀다. 운이 좋았다. 800원짜리 음료수가 나왔다. 단지 100원을 벌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목적지인 반월당으로 향했다.
이 자판기의 복불복 코너는 700원을 넣으면, 뭐가 나올지 모른다. 800원짜리 스포츠 음료나 소다수가 나올 수도 있고 같은 가격의 음료수가 떨어질 수도 있다. 아니면 운이 없어 500원짜리 캔커피를 마셔야 되는 경우도 있다.
이상동 두류역장은 복불복 자판기에 대해 "참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웃었다. 두류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정규영(25'중국 북경항공대 3학년 휴학) 씨는 "무미건조한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라며 "평상시에 친구들끼리도 재미 삼아 복불복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이며, 사행성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복불복 세상도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찾는 키즈카페에 있는 복불복 게임기도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500원을 넣으면 막대사탕이나 다른 종류의 사탕이 2개 나올 수도 있고, 4개가 나올 수도 있다. 디지털판에 숫자가 돌아가고 있어, 버튼을 누르면 2와 4 사이에서 멈춘다. 그 숫자는 바로 아이들이 받을 사탕의 개수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복불복 세상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TV 프로그램'각종 홍보에도 등장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던 TV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가장 큰 재미를 준 코너가 바로 '복불복'이었다. '야생 버라이어티'인 이 프로그램은 게임을 해서 서로 좋은 먹을 것을 차지하고, 힘든 일을 할 사람(야외 취침' 설거지'음식 재료 구하기 등)을 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복을 차지하기 위해 팀원끼리 작전을 짜고, 사생결단(?)으로 몸을 던지는 연예인들의 적나라한 모습은 시청자들의 복불복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각종 패러디물도 등장했다. 영화 '실미도' 포스터에 '1박2일' 출연 연예인들의 얼굴을 합성해 '힘도 없었다. 운도 없었다. 팀도 안 맞았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만들었다. '복불복 룰렛' '할리갈리' 등 '1박2일' 복불복 코너에 나온 각종 게임들은 인기 상품으로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한 케이블 TV에서 방영한 '복불복쇼'란 프로그램은 다양한 게임을 통해 벌칙을 받을 사람을 정한다. 그리고 복불복 게임 벌칙자에게 먹기 어려운 음식들을 먹도록 한다. 괴로워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묘한 재미를 느낀다. 이 프로그램은 가학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시청자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복불복쇼 2'로 이어지고 있다.
'참이슬'이란 소주를 만드는 주류업체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참이슬과 함께하는 1박2일 복불복 MT'라는 이벤트를 마련해 호응을 얻었다. 이뿐 아니라 요즘 기업체들도 MT 또는 야유회 등을 가게 되면 복불복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이벤트 진행자들도 차별화된 복불복 게임을 구상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게임업체인 엔트리브소프트(대표 김준영)도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에서 'GM동물왕배 복불복 대회'를 개최했다. 인기게임 운영자 '동물왕'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정해진 랩타임(구간 기록)에 가장 근접하게 달성한 유저가 우승하는 이벤트 대회다. 대회가 복불복으로 진행되는 만큼 우승 상품도 복불복으로 정해진다. 각 조의 우승한 유저는 사다리타기를 통해 참치나 김 선물세트, 라면 한 박스, 목욕용품 선물세트 등 8가지 품목 중 하나를 받게 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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