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980년대 록 밴드 '들국화'가 부른 '하나는 외로워'라는 곡이 있다. 가사는 이렇다. "둘이, 둘이. 하나는 너무 외로워. 영화를 볼 때도, 산책을 할 때도. 하나는 너무 외롭지. 둘이, 둘이." 하나가 아닌 둘이 됐다. 일단 외로움은 해결됐다. 하지만 노래는 2배수 연산을 계속 이어 나간다. "넷이, 넷이. 그런데 우리 사이에는 너무 넓은 간격이. 날이 갈수록 서로 부담될 만큼 우리는 약해지지만." 하나에서 둘을 거쳐 넷을 형성했더니 서로 사이가 멀어지고, 부담도 생겼단다. 아마도 여럿이 모여 부대끼다 보니 갈등을 겪게 되고, 스트레스도 느끼게 된 때문일 것이다. 노래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우리는 멀고 긴 길을 가야 하기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많이!"
이 곡이 발표된 1986년은 싸이월드,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요즘 SNS의 특징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외로움으로 비유되는, 온라인 인맥망에 얽히고 싶어하는 인간의 관계 욕구다. 두 번째는 낯선 인맥망에 얽히면서 느끼게 되는 스트레스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더 큰 온라인 인맥망에 얽혀들기를 갈구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점점 파편화되는 개인들은 SNS와 같은 온라인 인맥망을 통해 사회 속 관계 욕구를 손쉽게 충족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폐쇄적 온라인 인맥망에서
"학교 동창 찾고, 사이버 공간에서 일촌 맺고,"
온라인에서 인맥을 형성한다는 개념은 SNS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중'고등학교 동창을 찾아준다는 콘셉트로 인기를 끈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다모임'과 '아이러브스쿨'이 대표적이다. 다모임은 1999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학교와 출신 지역, 입학 연도가 같은 회원들을 모아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준다는 아이디어로 한때 1천만 명의 회원을 뒀다. 다모임보다 한 해 늦은 2000년에 등장한 아이러브스쿨에도 1천만 명의 회원이 가입했고, 온라인 모임이 실제 오프라인 동창회로 이어지며 당시 하나의 문화코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직장인 박성일(38) 씨는 다모임과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처음으로 온라인 인맥망의 매력을 맛봤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 이하는 다모임에, 중'장년층은 아이러브스쿨에 주로 가입해 활동했다. 당시 동창 모임 열풍과 첫사랑 찾기 붐이 일었다. 나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친구들과 동창 모임을 가졌고, 학창 시절 짝사랑한 여학생들을 검색하며 날밤을 새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모임과 아이러브스쿨은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이내 사라졌다. 그 사이에 나타난 것이 '싸이월드'다. 1999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다모임과 아이러브스쿨에 밀려 큰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2001년 미니홈피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인 2천만 명 이상이 회원가입한 대한민국 대표 온라인 인맥망으로 성장했다. 싸이월드의 핵심 요소는 '일촌'과 '미니홈피'다. 사용자끼리 일촌이라는 관계 맺기를 하면 가상공간에 지은 집인 미니홈피에 서로가 게시한 사진과 글을 열람하고, 댓글도 달 수 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에서 잘 알고 지내던 사람과 온라인에서도 교류하기 위해 일촌을 맺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 점점 낯선 사용자와 일촌을 맺는 경우도 나타났다. 유명인, 연예인과 일촌 맺기에 성공하면 친척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웃사촌 정도는 된 것처럼 기뻐했다. 일촌 맺기는 기존 인맥을 온라인을 통해 강화하고 유지하는 수단에서 낯선 사람과 새로운 인맥을 맺는 수단으로 그 기능을 확장해 나갔다. 일촌 맺기가 우리에게 선사한 온라인 인맥 맺기의 경험은 이후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개방적 온라인 인맥망으로 이어진다,
◆개방적 온라인 인맥망으로
"일촌보다는 팔로잉, 스마트폰으로 낯선 사람과 친구 맺기."
트위터는 2006년 미국에서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2008년 전후로 사용자 수가 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싸이월드의 일촌 맺기보다 자유로운 '팔로'(follow)에 열광했다. 상대방의 허락이 필요한 일촌 맺기와 달리 일방적으로 '팔로잉'(following)을 해 관계를 맺으면 상대방의 게시글을 읽고, 반응도 보낼 수 있다. 페이스북도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2004년 하버드대학교 학생 마크 주커버그가 개발한 페이스북은 올해 기준으로 8억 명 이상의 사용자가 가입한 세계 최대 SNS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의 트위터 인구는 2010년 65만 명에서 올해 680만 명으로 10배가량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페이스북도 최근 가입자가 700만 명에 육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모두 가입한 직장인 장현진(29'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더 자주 접속한다고 했다. 사진이나 글을 업데이트하는 싸이월드 일촌이 최근 크게 줄었기 때문. 그 일촌들이 페이스북으로 옮겨와 각종 게시물을 수시로 올리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바로바로 접속해 확인한다는 것.
실제로 SNS가 세대교체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소셜베이커스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가입자 수는 싸이월드가 2천600만 명에 육박하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월등히 앞섰지만 얼마나 자주 접속, 사용하는지를 가늠하는 방문자 수는 싸이월드는 계속 하락세인 반면 페이스북, 트위터는 점점 늘고 있다.
◆SNS가 주는 스트레스
SNS의 과열 양상에 지치고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그토록 얽혀들기를 원했던 온라인 인맥망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나섰다.
대학생 이준호(24'경북대 신문방송학과 4년) 씨는 조만간 페이스북을 탈퇴할 생각이다. 그는 SNS가 요즘 받는 스트레스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온라인을 통해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어요. 하지만 종종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악성 댓글로 시비를 거는 등 스트레스를 줬어요. 또 SNS로 개인 정보를 빼내는 범죄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잖아요? 제가 피해자가 될까 봐 겁도 나고요."
페이스북이 먼저 붐을 일으킨 미국에서는 회사 상사, 학교 선생님, 부모 등이 각각 부하직원, 학생, 자녀와 친구를 맺고, 감시하는 모습을 보이자 탈퇴하는 사용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SNS에 남긴 흔적을 지워주는 사이트도 나타났다. '웹 2.0 자살기계'(www.suicidemachine.org)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자신의 SNS 계정과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올린 글과 사진은 물론 계정까지 없애준다.
직장인 오모(30'여) 씨는 "모르는 사람이 친구 신청을 하면 거절하면 되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직장 상사의 경우 '왜 친구 신청을 받아주지 않느냐'고 물으면 거절하기 힘들어 온라인 인맥을 맺게 된다. 친구들과 온라인에서 만나 즐기던 직장 상사의 험담을 이젠 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SNS를 끊을 수는 없다. 지인들과의 교류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곧 회원 탈퇴를 하고 가명으로 신규 가입을 하거나, 카카오스토리처럼 최근 뜨는 SNS로 갈아탈 것"이라고 말했다.
◆왜 SNS에 열광하나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장우영 교수는 SNS가 "탈근대를 원하는 우리 사회를 위한 촉진제"라고 정의한다. 그는 "근대 사회는 수직적인 위계질서와 틀에 박힌 질서를 중시한다. 1천 년 이상 유교적 패러다임 안에서 작동한 한국사회가 그랬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 등을 거치며 사람들은 수평적인 파트너십을 원하게 됐다. 또 개인주의가 나타나고, 개성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유교적 질서만이 아닌 다원화된 패러다임을 원하게 됐다. 서로 친구를 맺고, 다양한 이야기를 주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SNS는 변화를 원하는 우리 사회에 딱 들어맞는 옷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SNS가 사용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매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 교수는 "SNS가 주는 소속감, 빠른 정보 공유 등의 요소가 사회생활에서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얽히려든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익을 공유하는 SNS도 나타나고 있다. 비즈니스에 특화된 온라인 인맥망이 최근 인기리에 서비스되고 있는 것. 미국의 '링크드인'이 대표적이다. 간단한 프로필 작성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존 SNS와 달리 이력서나 사업계획서와 다를 바 없는 자세한 프로필 작성이 가입 조건이다. 마케팅, 구직 등의 분야에서 서로 원하는 프로필을 가진 기업체나 구직자들을 맞춤형으로 연결시켜주기 위해서다. 전 세계 1억2천만 명의 비즈니스맨들이 가입해 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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