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매는 어치고 헐라고?"
"나는 걸어갈란다."
닭 판 돈을 기성회비와 차비로 자식에게 다 내준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신작로를 걸었다. '내가 탄 차가 지나가자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차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돈을 꼭 쥔 주먹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먼지 낀 유리창이 더 흐려 보였다. 앞 의자 뒤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이며 나는 울었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점심을 굶은 어머니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오리 신작로를 또 걸어야 한다.'
김용택 시인이 펴낸 '김용택의 어머니'는 그 어머니를 향한 애절한 노래다. 열여덟 나이에 섬진강변 진메마을로 시집와 땅을 일구며 남편 뒷바라지하고 자식을 키워 낸 어머니. 저자는 어머니의 생애를 사계절의 풍경을 따라 시와 산문, 편지와 일기로 다채롭게 엮어낸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눈물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둔 딸 생각에 가슴이 메이고, 서울로 향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친다. '니 학교 그만둔 것/징검다리를 건너다가도/밭을 매다가도/그냥 우두커니 서지고/호미 끝이 돌자갈에 걸려/손길이 떨리고/눈물이 퉁퉁 떨어져/콩잎을 다 적신다'''.'
어린 자식 손등이 터도, 눈에 티가 들어가 아플 때도 젖을 짜서 낫게 해주던 어머니. "할머니 젖가슴이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요?" 손녀의 철없는 질문에 "니 애비가 다 뜯어묵고 이만큼 남았다."며 웃어넘기는 어머니.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들에게 흙손 터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하긴 어렵다. 시인의 어머니는 지금 50, 60대의 자화상일터다. 책을 읽는 내내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내 어머니도 젊다. 것도 또래 친구들의 어머니보다 너댓살은 젊다. 열여덟 이후 도시에서만 살았으니 쪼글쪼글한 주름도 없고, 흙내나는 마른 손은 더욱 아니다. 꽃다운 처녀가 시집와 땅과 벗하며 자식들을 키워낸 시인 김용택의 팔순 넘은 노모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결혼식은 번듯한 예식장에서 했고, 무일푼으로 서울로 상경하는 아들 손에 꼬깃꼬깃한 돈을 쥐어줄 일도, 기성회비를 못내 아들이 학교에서 쫓겨날 일도 없었다. 아들 형제만 뒀으니 집안 형편에 학업을 중도 포기한 딸 자식 생각으로 가슴이 미어질 일도 만무했다.
하지만 삶의 바탕은 달라도 어머니의 소원과 자식의 시선은 서로 교차한다.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안 아프고, 그냥 바람처럼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소원. 자식의 시선은 '두려움'이다. 내 어머니도 시간의 흐름 앞에 작아지고 스러져갈 것이라는 두려움. "우리 어머니가 다 늙다니. 어머니가 삶의 생기를 점점 잃어가고 기운을 어딘가에 빼앗기며 점점 작아지고 점점 세상에 어두워져가시는 모습은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256쪽. 1만4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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