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덕에 눈감은 시장주의의 한계…『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마이클 샌델 지음/안기순 옮김/와이즈베리 펴냄

프로야구 시즌이 한창이다.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답게 야구장은 거의 만원사례다. 지정석이라도 잡으려면 예매가 오픈되는 온라인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 미친듯이 '클릭질'을 해야 한다. 경기 당일 매표 창구 앞은 길게 줄이 늘어서고, 곳곳에서 암표상들이 은밀한 제안을 속삭인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에게 암표는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다. 프로야구 경기 관람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암표를 구매한다. 암표상은 입장권을 팔아서 좋고, 사는 사람은 편안하게 경기를 볼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란 거다. 이 거래로 구매자와 판매자는 모두 행복해지고 효용은 증가한다. 이는 자유시장이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암표를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암표가 '불공정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싶어도 암표를 살 여유가 없는 사람은 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줄어든다. 암표로 좌석을 구하는 행위는 경제적 능력을 앞세워 다른 이들의 기회를 빼앗는 꼴이다. 암표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줄서기의 도덕'을 더욱 빠른 서비스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시장의 도덕'으로 대체한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이처럼 시장지상주의가 내포한 도덕적 맹점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지난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사회에 '공정사회' 열풍을 몰고 왔던 샌델 교수는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최근 수십년간 이 사회가 '시장경제'에서 '시장사회'로 옮겨갔다고 진단한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도구'지만, 시장사회는 시장 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의 스며든 '생활방식'이다. 시장은 가정생활'우정'성'출산'건강'교육'자연'예술'시민정신'스포츠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불평등하거나 강압에 의한 거래만 아니라면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샌델 교수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시장 거래는 삶의 방식과 사고 방식,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반박한다.

시장만능주의의 맹점은 '공정성'을 해치고 '부패'를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암표나 대리모가 사실상 강요당한 선택에서 나오는 불평등에 대한 의문이라면, 부패는 시장의 논리로 재화를 교환했을 때 훼손하거나 변질시킬수 있는 태도와 규범을 말한다. 가령 이스라엘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늘자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의 수는 오히려 늘었다. 늦었을 때 교사에게 느끼던 도의적 '죄책감'이 요금을 내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규범을 바꾼 셈이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금전적'물질적 보상도 규범의 영역에 시장이 끼어든 경우다. 최근 지자체들은 실비보상이나 할인가맹점 제도, 할인쿠폰 또는 간병서비스 제공,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등 봉사자들을 위한 물질적'금전적 보상 제도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자원봉사자의 수는 늘어날 수 있지만 봉사의 질이 높아지고 참여 열기가 활발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자원봉사를 장려하는 재정적 인센티브가 공공정신에서 우러한 고귀한 행동을 보상받기 위한 '노동'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행을 상품화하면 공감'관용'배려 같은 규범의 자리에 시장가치가 들어선다.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으면서 불평등은 심화되고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삶은 점차 분리된다.

샌델 교수는 "시장의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라고 역설한다. 돈으로 사고 팔때 원래의 가치와 목적이 훼손되는 재화는 시장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돈으로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가 무엇인지 공론의 장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한다고 강조한다. 336쪽. 1만6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