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산골 분교에도 왕따와 학교 폭력이 있습니까?
"산골 분교 아이들도 종종 다툽니다. 하지만 늘 터놓고 얘기해요. 한 아이가 저에게 와서 '누구와 다퉜다, 그 이유는 무엇이다'며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다툰 아이를 찾아가서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화해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면 아이들끼리 알아서 해결합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니까요. 이게 상담이에요. 상담실과 상담 선생님이, 또 체벌과 징계가 굳이 필요한가요? 일부 도시 학교의 아이들은 선생님과 상담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상담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서 입을 닫아버리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상주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 이원두 선생님)
질문 2. 곧 스승의 날이고 하니 질문 하나 드릴게요. 사제지간의 정이란 무엇입니까?
"저에게 입석분교는 두 가지 의미입니다. 선생님이 돼 첫 발령을 받은 곳이 화북초등학교예요. 본교에 4년 있다가 올해 입석분교로 왔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산골 분교의 선생님이 된 것이 첫 번째 남다른 의미입니다.
두 번째 남다른 의미는 선생님은 늘 학생을 가르치기만 한다는 생각을 바꾼 것이에요. 이곳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이따금 아이들도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동심이라든지 세상을 보는 맑은 시선이죠. 일방적으로 지식만 전달하는 '기능적인' 사제지간이 대부분인 요즘에 이곳에서 서로 섞이고 스미는 정이 무엇인지를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상주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 허재석 선생님)
산골 분교 선생님들의 현답(賢答)은 기자의 질문을 우문(愚問)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랬다. 산골 분교에서는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인 학교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상주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봤다.
◆경상북도 북서쪽 맨 끝자락 산골 분교
이달 8일 오전 8시쯤 기자는 대구에서 상주로 출발했다. 오전 9시 20분쯤 청원-상주고속도로 화서나들목에서 내렸다. 굽이굽이 낡은 2차로에서는 좀체 차를 구경하기 어려웠다. 간간이 다니는 차들이 느린 경운기를 위해 속도를 줄이고, 묵묵히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엔진을 단 승용차가 농사짓는 경운기를 공경할 줄 아는 곳이다. 오전 9시 50분쯤 시야에 아담한 2층 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들어왔다. 경상북도 북서쪽 맨 끝자락에 위치한 학교인 상주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다.
입석분교는 입석초등학교가 1994년에 분교가 된 것이다. 근처 용화분교와 함께 화북초등학교에 소속돼 있다. 현재 학생 수는 7명, 선생님은 4명이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2층 학교 건물은 그대로 남았다. 덕분에 건물 공간을 여유 있게 활용하고 있다. 학생 1인당 1대씩 돌아가는 컴퓨터가 있는 컴퓨터실, 수백 권 책이 꽂혀 있는 도서관, 각종 최신 교육 기자재로 가득한 다목적실, 급식실, 과학실 등 있을 것은 다 있다. 그리고 입석분교에만 있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 학교 옆 공터에 마련된 텃밭이다.
◆농촌 소규모 학교의 장점은
이날 입석분교 아이들은 학교 텃밭의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엉덩이를 붙인 채 모종 심기에 한창이었다. "잎들깨, 양상추, 적상추, 배추, 방울토마토, 당조고추, 피망…." 갑자기 2학년 임가람 양이 심을 모종을 손으로 하나씩 가리키며 이름을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기자는 "당조고추를 어떻게 알아요?" 하고 물었다. "이거 주변에 흔하게 나는 거예요. 모르세요?" 당조고추를 본 적도 없는 기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텃밭 수업은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공동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시골 학부모들도 도시 학부모들 못지않게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적 올리는 데 골몰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학생과 선생님과 학부모가 함께 텃밭을 가꿔보자고 제안해서 놀랐습니다. 씨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는 4계절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체험해보자고 했어요. 학부모들이 모종이며 농기구도 이것저것 가져다줍니다. 아이들도 좋아합니다. 앞으로 각종 야채나 채소는 물론 가축도 키워 볼 계획입니다."
텃밭 수업도 좋지만 기본적인 교과 학습 환경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기자가 "학교 주변에 사교육 환경이 전혀 없으니 학부모들의 걱정과 고민이 크겠다"고 질문하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화북초등학교 이창모 교장 선생님은 "학생 7명에 선생님 4명이 방과후까지 책임지고 가르치고 있다. 과외나 다름없다. 학원 왔다 갔다 하는 데 허비할 시간도 아낄 수 있다. 입석분교 졸업생들이 진학한 중학교에서 성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계속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규모 학교인 분교는 오히려 견학이나 현장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소규모 학생들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반면 몸집이 큰 도시 학교는 어디 한 번 가려면 장소 정하기도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한 번 더 딴죽을 걸었다.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6학년 임셀라 양의 담임 김시년 선생님에게 "셀라 양을 학원에 보내 중학교 선행 학습을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선생님은 "셀라 양과 넓은 교실에서 단둘이서 1대 1로 개인과외를 방불케 하는 수업을 하고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며 "소규모 학교에서는 아이들 모두가 함께 모여 생활하며 특히 6학년들은 맏언니, 큰형으로서 리더십을 배워 간다. 이는 도시 학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학교 폭력과 왕따가 없는 무공해 교육 환경도 분교의 장점이다. 손하은(5학년)'정웅(4학년) 남매 가족은 3년 전 호주에서 상주로 귀농했다. 하은이네 부모님은 처음에는 아이들을 대도시의 규모가 큰 학교로 보낼지, 집과 가까운 입석분교로 보낼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결국 입석분교를 선택했다.
전숙희 선생님은 하은이와 정웅이가 분교로 온 덕분에 한국 생활에 '순하게' 적응했다고 했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언어부터 학업은 물론 학교생활까지 스트레스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입석분교는 학생 수가 적어 교사들이 그만큼 신경 쓸 여유가 많았습니다. 하은이 남매가 만약 규모가 큰 도시 학교로 갔다면 학교 폭력과 왕따가 빈번한 틈바구니 안에서, 또 교사들도 학생 수가 많아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분명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전 선생님은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교사가 통제할 수 없는 학교 외부의 환경 요인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농사지으러 오라면서 자식 농사는 어떻게
입석분교를 비롯해 다른 농촌 소규모 학교들도 이 같은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고민이 많다. 농촌사회 인구가 점점 줄어들면서 정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 경북도교육청도 올해부터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나서고 있다. 경북도 내 학생 수가 15명 이하인 본교 29개교와 10명 이하인 분교 35개교 등 모두 64개교를 통폐합할 예정이다. 실제로 입석분교 인근의 송계분교가 최근 폐교됐다. 입석분교도 없어질 위기에 놓인 셈이다.
허재석 선생님은 "지자체는 귀농 지원 정책을 펼치는데 반대로 정부는 시골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 중이다. 정책이 엇갈려 귀농을 고려하는 학부모들이 망설일까 우려된다. 농사지으러 오라면서 자식 농사는 못 짓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년별로 학생이 수명 정도는 돼야 아이들끼리 모여 놀고, 토론도 하며 알콩달콩 재미난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 입석분교도 앞으로 학생 수가 늘어나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널리 알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창모 교장 선생님은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분명 정부가 오랫동안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입석분교와 같은 일부 시골 소규모 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분교가 교육 기능 이외에도 시골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아직도 입석국민학교 시절 졸업자들이 학교를 방문하고, 동창회도 연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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