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걷는 현대인 위에 뛰는 환경변화…문명이 낯선 인간

피터 글루크먼'마크 핸슨 지음/ 김명주 옮김/ 공존 펴냄

사춘기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돌림, 폭행,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비만과 성인병은 연령 구분 없이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소아비만 때문에 어린이들까지 성인병을 앓고 있고, 심혈관 질환과 정신 질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기대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하고 넉넉한 노년을 누리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세계적인 진화의학자이자 발생생물학자인 저자들은 현대의 문명병과 사회문제가 인간의 문명(=환경) 변화 속도와 생물학적 적응 속도 간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과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거의 1만 년 전 환경에 맞추어 선택된 것들이고 어머니 뱃속에서 발생 초기에 주변 환경과의 맞물림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간략히 정리하면, 인간이 환경을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시켜서 자신의 적응 능력을 벗어나는 환경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와 관련된 문제는 영양 상태가 점점 좋아지면서 신체 발달과 정신 발달 사이에 생겨난 성숙의 어긋남(mismatch) 탓이다. 우리는 진화 역사상 처음으로 심리사회적 성숙이 육체적 성숙 이후에 일어나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번식기 종료를 알리는 폐경기 증상과 노년의 문제들도 길어긴 수명으로 인한 어긋남의 결과이다. 진화적 선택은 번식이 끝날 때까지만 작동할 수 있지만 인간이 그보다 오래 살고 있다. 실제로 폐경 이후 기나긴 삶을 누리는 생물은 현대 인간이 유일하다. 또한 어머니 뱃속이나 생후 초반에 선택되어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길어진 인생 후반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비만과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 등은 대사의 어긋남으로 볼 수 있다.

랜돌프 네스와 조지 윌리엄스는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에서 생태발생생물학(ecological developmental biology:생물이 발생 과정에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다루는 신생 학문)을 인간의학에 새롭게 적용했다. 유전학과 진화학의 현대적 종합에 '발생(발생학)'을 추가하면 부적응적 어긋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간이 창조한 인공적 세계와 진화한 몸 사이의 부적응적 어긋남에 발생의 차원을 덧붙인 것은 얼핏 작은 차이 같지만, 해법으로 가면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단지 부적응 문제로만 그친다면 유전자를 바꾸거나 우리 몸이 다시 진화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둘 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긋남에 '발생'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함의는 매우 클 수 있다. 한 개체의 발생 초기, 태아 시기, 출생 후에 적절한 중재를 할 수 있다면 예상되는 많은 문제들을 적어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유전자와 똑같고, 다른 점은 이 유전자들과 그것이 발현되는 방식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뿐이다. 따라서 유전자 대 환경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생물학을 논하는 일은 완전히 비논리적이 될 수 있다. 모든 생물은 두 요인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의존한다. 400쪽, 2만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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