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많은 운동 중 왜 이걸 하냐고요?"
대구대 크리켓팀 머슬덕 김종호 감독(39'건강증진 운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생소하기 때문이죠." 이 대답엔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크리켓만 빼고 모든 종목에 출전했습니다. 하나의 빈공간 때문에 완성되지 못한 그림의 마지막 퍼즐을 끼우고 싶어 크리켓 배트를 잡게 됐습니다."
크리켓은 쉽게 말하면 영국식 야구다. 11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교대로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공을 배트로 쳐서 득점을 내는 점은 야구와 같다. 하지만, 출전선수 인원'경기장 규모'장비 등 많은 부분이 야구와는 다르다. 종주국 영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영연방국가들에서 즐기고 있는데, 그곳에서의 인기는 야구와 축구를 능가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이들 국가에서 온 기업인, 유학생, 근로자 등이 즐기고 있다. 대구대 머슬덕은 성균관대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순수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크리켓팀이다.
머슬덕은 2010년 대구대 건강증진 운동연구소 배준원(44'경북크리켓협회 전무이사) 선임연구원을 중심으로 건강증진학과 교수와 연구원, 학생이 모여 만든 팀이다. 배 연구원은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로부터 크리켓을 배웠다(인도네시아는 크리켓을 즐기지 않는다). 크리켓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크리켓을 하면 영연방국가 국민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내에 온 후 건강증진학과 김훈 교수(경북크리켓협회 회장)의 도움을 받아 회원들을 모집하고 연습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크리켓을 이해시키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함께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해서 뭘 하냐", "운동은 되냐"는 질문부터 날아왔고, 애써 설명하면 관심 없다고 돌아서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다행히 학과 연구원과 몇몇 학생들이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3월 어렵게 모인 10여 명으로 창단했고, 경기도에서 열리는 크리켓 리그에도 참가했다. 처녀출전이었지만 11개팀 중 10위를 차지하며 희망을 얻었다.
지난달 13일에는 경북도체육회의 도움으로 경북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8개 크리켓팀이 합동 창단식을 갖게 됐다. 머슬덕은 앞으로 인도인들이 주로 포진한 포스텍팀과 파키스탄인들이 주축을 이룬 이글스팀 등 실력 있는 지역팀들과의 교류전을 치를 수 있게 됐다.
9일 오후 머슬덕의 연습일정이 잡혔다고 해 대구대를 찾았다. 공대 운동장에 들어서자 가로 20m 정도의 석회가루를 뿌려 그린 직사각형의 크리켓 피치에는 긴 빨랫방망이 같은 배트를 들고 정정욱(39) 연구원이 공을 맞히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야구의 투수로 불리는 볼러는 20m 앞에 세워진 위켓을 향해 공을 던지는 데, 가만히 서서 던지는 야구의 투수와 달리 뒤에서 힘껏 달려와 배트맨(타자) 앞에 공을 떨어뜨려 바운드를 시켜야 한다. 팔꿈치가 굽혀지면 안 되기 때문에 독특한 투구자세가 만들어졌다. 팀의 코치인 김홍기(26) 씨는 "달려온 뒤 힘을 모아 던져야 해 리듬이 중요하고, 팔을 쭉 뻗은 채 큰 회전을 그리며 던지는 게 쉽게 익혀지지 않아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슬퍼 보이던 머슬덕의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된 건 대구대 여자친구의 권유로 최근 팀에 가입한 파키스탄인 유학생 무하마드(26'영남대)가 온 뒤부터였다. 파키스탄에서 볼러를 했다는 그의 투구는 폼을 익혀가는 대구대 회원과 달리 자연스럽고 공의 위력도 대단했다.
볼러가 한 번에 던질 수 있는 공은 6개. 다 던지고 나면 수비를 한 뒤 다음에 다시 던져야 한다. 그 때문에 한 팀에 많은 볼러를 보유해야 하는 데, 빠른 공을 던지는 패스트볼러, 공의 회전을 많이 주는 스핀 볼러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볼러가 있는 팀이 유리하다.
100km를 훨씬 능가하는 구속과 회전을 많이 먹은 채 바운드 된 공을 쳐내기 쉽지 않아 배트맨 역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볼러가 던진 공이 위켓위에 얹힌 베일을 맞혀 떨어지면 아웃이 되기 때문에 배트맨은 필사적으로 이를 지켜야 한다.
수비는 볼러와 포수 역할을 하는 위켓키퍼 외 나머지 9명은 타원형(피치에서 90~150m 거리) 경기장 곳곳에 배치되는데 별다른 장비가 없다. 김준호 연구원은 "야구와 달리 크리켓은 아웃 개념이 달라 배트맨 한 명의 공격이 굉장히 길어질 수 있다"며 "반대로 효과적으로 아웃을 잡아내지 못하면 수비는 온종일 땡볕에 서 있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생소한 스포츠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공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다. 크리켓에 필요한 장비는 위켓, 배트맨 보호장비 및 배팅 장갑, 배트 2개, 위켓키퍼가 끼는 주방에서 쓰는 요리 장갑처럼 생긴 글러브, 공 등인데, 아직 국내에서 수입업체가 없어 직접 수입해야 하는 데 그 가격이 만만찮다.
배트 하나 가격이 40만원에 이르며, 공도 개당 5만원 정도 한다. 경북도체육회로부터 장비지원을 기다리는 머슬덕은 지금까지 실내 연습용 장비를 겨우 구해 연습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정욱 연구원은 "많은 단체 종목이 각자의 역할에 열중하지만 크리켓은 모든 구성원이 배트맨'볼러'수비의 책임을 동시에 다 해야 해 굉장히 공평한 운동이다"면서 "아직 국내에선 낯선 종목이기 때문에 널리 알리고 보급하고 싶다는 개척정신을 갖게 하는 점도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