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공모전을 여는 기쁨-바람난 돌할매-

새벽 두 시께 자리에 누웠지만 쉬 잠이 들지 않습니다. 피곤에 앞서 잔잔한 흥분이 채 사그라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도내 중고등학생들이 보내온 322편의 응모작품 심사를 마치고 난 뒤끝의 여음이 얇은 봄 이부자리를 데워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제1회 경상북도 중고등학생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공지한 이래 두어 달 동안 계절을 잊은 채 응모홍보를 위하여 동분서주했습니다. 그 사이에 마른 겨울 산에 물이 올랐습니다. 온 세상은 연둣빛 환희로 넌출져 흘렀습니다. 그것도 잠시, 연분홍 산도화를 떨군 산자락이 슬며시 진록으로 채워지더니만 산과 들녘이 푸르름의 풍요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정초에 꽃 공양으로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은해사 주지 스님을 찾았습니다. 우향각(雨香閣)의 스님은 늘 그렇듯 학 같은 모습으로 정좌하고 계셨습니다. 단출한 차상을 앞에 두고 신년 덕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지난 연말에 개원한 스토리텔링연구원에 관한 이모저모 이야기들도 자연스레 오갔습니다.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스님은 교육이나 스토리텔링도 중생제도의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있는 교육, 이야기가 있는 학교생활, 나아가 역동적인 이야기를 지닌 청소년기를 보내야 한다는 주제의 대화로 공감대를 넓혀갔습니다. 심지어 스님은 절집의 일화들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그게 곧 스토리텔링입니다. 산사에서든 속가에서든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곧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고 보면 이야기가 없는 세상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다만, 우린 그 이야기를 유의미하게 찾아내거나 맛깔스럽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나눌 이야기가 없으면 저절로 대화의 길이 막히고 맘이 뜨게 됩니다.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끈을 붙여주는 접착제와 같은 것이니까요. 이야기는 서로에게 감정과 정보의 전달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가 하면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가는 지름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근래 학교폭력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는 것도 모두 대화의 단절, 이야기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그날, 나는 스님과 지역 내 청소년들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기회를 주자며 다담을 끝냈습니다. 배움의 과정에 있는 젊은 학생들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는 스님께서는 그러한 뜻 깊은 일에 넉넉한 장학금을 희사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공모전이 마련된 것입니다. 공모기간이 다소 짧았지만 학생들의 관심과 호기심은 대단했습니다. 각 지역에서 보내온 작품들은 저마다 내력을 지닌 소중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마을과 나무와 바위, 고택과 석탑 속에 숨어 있는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이야기들을 알알이 캐내 놓았습니다. 애락의 너울로 켜켜이 감싼 전래의 이야기들을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새롭고도 신선한 상상의 나래를 붙여놓았습니다. 제자리에서 오로지 찾아오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영천의 '돌할매'를 바람잡이 할매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는 종횡무진 밖으로 나돌면서 부닥치고 경험하는 이야기들을 신나게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확 뒤집어 놓은 발칙한 발상이지요.

나는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으로 즐거운 해찰(解察)의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곧 아름답고도 소중한 이야기의 현장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야기와 더불어 즐겁고도 희망찬 학교생활을 가꿔 나갈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시절에 비해 요즈음의 중고등학생들은 너무 바쁩니다. 학과 공부가 지나치게 무겁고 벅찹니다.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입니다. 자연의 변화를 눈여겨본다거나 아름다운 예술품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는 듯합니다. 풋풋한 청소년기를 너무나 메마르게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괜한 걱정이 앞섭니다. 나는 그 무심하고 건조한 마음 밭에 정서의 쟁기질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묻힌 이야기를 찾아내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그들이 곧 세대의 가교자라고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오늘 밤은 참 깊고도 짧습니다. 어둠 속 창 밖에 봄비가 내리나 봅니다. 하루하루 산의 빛깔이 영글어가듯 끊이지 않는 이야기의 실꾸리들로 하여금 우리네 삶이 풍요해지길 기대해 봅니다.

김정식/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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