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지독한 대칭이었다. 좌로 우로 고개를 움직이며 비교해 봐도 판박이같이 양쪽의 형상이 똑같다. 약 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구조물은 완벽한 대칭의 미를 드러내고 있다. 부하라 역사지구를 대표하는 건물 미르아랍 마드라사(신학교) 앞에 섰다. 건축물에서 보이는 대칭구도에는 질서와 권위를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카메라 앵글을 맞추었다. 이슬람 신학교라는 엄숙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어서인지 섣불리 셔터를 누르기가 망설여진다. 1993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하라 역사지구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므로 이 건물 자체가 세계유산이다. 정복자 티무르 왕조 후기의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양쪽에 청록색 돔 두 개가 균형을 잡고 청백색 모자이크 타일을 정교하게 장식한 이 마드라사는 건축사학자들로부터 '이슬람건축미술의 백미'라는 찬사를 듣는다. 건물 벽면에는 식물 문양과 문자 문양을 조합한 무늬가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어 오묘한 연결의 의미를 보여주는 듯하다.
1536년 부하라 칸국의 우바이드라 칸은 지식이 풍부하고 학문과 예술을 권장하는 지배자였다. 그는 최고의 교육기관인 거대한 이 신학교를 건설했다. 그 명칭을 자신이 평생 존경해온 스승의 이름인 미르아랍으로 정하고 학교 자체를 헌정했다. 스승의 이름 미르아랍은 아랍인의 왕자라는 뜻으로 당시 이슬람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정신적 지도자였다. 건물 정면 입구를 중심으로 양측에 공간이 있는데 왼쪽을 스승과 제자의 석관이 함께 놓여 있는 묘지로 구성되어 있다. 왕은 그토록 존경하던 스승의 발 아래쪽에 영원히 잠들어 있어 후세인들에게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 같은 영적인 공간 속에서 살았던 학생들은 분명 알 수 없는 숙연함을 느끼며 학문에 매진했을 것이다. 건물 1층은 여러 개의 강의실, 그리고 도서관과 식당, 2층은 기숙사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를 금지한 구 소련지배 시절에도 많은 이슬람 신학교들 중에서 이곳만은 폐교시키지 않아 유명해졌다. 그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신학연구기관인 이곳으로 몰려 들어 공부했다고 한다. 지금도 각 지방에서 찾아든 수재들이 장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선생과 제자가 학문을 논하고 학구파 성직자가 똬리를 틀고 연구에 매진하는 곳이다. 500년의 배움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학문의 산실인 이 건조물은 티무르 왕조의 치욕이라는 상반된 빛과 그림자를 갖고 있다. 3천 명이 넘는 페르시아인 포로들을 노예로 팔아 건축자금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 건조물의 토대는 벽돌과 점토가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다져진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미르아랍 신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랜 세월동안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수많은 전란에도 파괴를 면하고 오늘날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두 건축물이 있다. 사마니 묘당과 마고키 아타리 사원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물이라는 사마니 묘당은 몽골 침략 시 도시가 무참히 파괴되었으나 1925년 흙속에서 발견되었다. 9세기경 이슬람 초기의 건축양식이어서 세계의 고고학자나 건축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마니 왕족의 묘당으로 지어졌는데 건물은 사각형 몸체에 반구형 돔을 얹은 구조이다. 벽돌들은 요철 모양으로 각각 다른 기하학적 무늬를 넣고 쌓아올려 명암을 나타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서지지 않도록 흙과 낙타 젖을 짓이겨 만든 벽돌이라고 한다. 돔형 천장은 우주를 상징하고 땅을 상징하는 바닥은 네모나게 했다. 천장 아래에 작은 창을 내어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벽면의 문양이 계속해서 바뀌게 했다. 황금색 또는 푸른색으로 내부를 비추는 빛의 신비스러운 조화를 느끼게 했다. 특히 달빛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하니 당시 건축가들의 미의식에 놀랄 따름이다.
6세기경에는 불교 사원이었다가 1936년 러시아 고고학자에 의해 모래 속에서 발굴된 마고키 아타리 모스크도 중첩된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도 평지보다 약간 낮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한때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이기도 했고 아랍 민족이 지배한 후 무슬림 상인들의 예배용 사원이 되었다. 파괴와 재건을 거듭했으나 9세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의 겉면과 내부, 상단과 하단의 벽면에는 시대별로 점철된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를 보면 아랍군에 의해서 또 칭기즈칸에 의해 차례로 파손된 흔적도 보인다. 그래도 오랜 세월동안 흙 속에 잠들어 있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오롯이 세상에 존재를 알리고 있다.
이 건물들을 보면 시간에 의해 마모된 흔적들을 품고 우뚝 서 있는 작은 거인처럼 느껴진다. 한 민족의 문화가 타민족에 의해서 멸망되면 과거의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키워나간다. 그렇게 중첩되면서 쌓여온 문화가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실크로드의 '문화요람'과 같은 지역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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