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15일 대구를 찾아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의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 등 경제 분야의 예민한 이슈의 중심에 있는 권 원장이 이날 고향인 대구를 찾은 것은 16일 경북대에서 있을 '캠퍼스 금융 토크' 때문이다.
권 원장은 '금융감독원은 군림하는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공공서비스 기관'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자신의 행보도 그런 흐름의 하나라고 했다.
권 원장은 금융감독원의 존재 가치는 약자의 입장을 이해할 때 빛을 발한다고 했다. 감독기관으로서 위엄은 있어야 하지만 눈높이를 약자에게 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경험담 하나를 소개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로 가정이 불화를 겪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 한 통이 왔어요. 편지를 쓴 사람은 주부였어요. 남편이 피해 당사자였고 편지를 쭉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이스피싱의 근본적인 원인은 카드사에서 유출된 개인정보에서 나왔더라고요. 그런데도 엉뚱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거예요. 카드사들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 섰어요."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카드사가 40%까지 피해 금액을 덜어주기로 한 것도 편지 한 통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금융회사가 사회적 책임, 특히 나눔에 인색하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존의 조건'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말했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유지는 공생에서 나옵니다. 자영업자가 쓰러지고, 파산하게 되면 누가 금융회사를 먹여 살립니까. 일부 금융회사들이 순익을 많이 내 직원들 성과급 주고, 주주들 배당금 줘서 잔치하면 그들만의 환호가 있을 뿐이죠. 결국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게 되거든요."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매듭지은 뒤 홀가분할 만도 했지만 권 원장은 적잖이 섭섭한 심정을 드러냈다. 곪아있던 저축은행 비리에 누구도 칼을 들이대지 않은 탓에 결과적으로 감독 소홀 책임이 자신을 향하고 있어서였다.
"흔히들 매너리즘이라고 하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예전에는 이렇게 했다'는 말이에요. 그런 분위기에서 창조나 혁신은 없어요. 저축은행 전수조사도 그렇게 시작된 거였어요. 예전에는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던 겁니다."
인터뷰 말미에 권 원장은 다소 우울한 얘기를 꺼냈다. 누구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가계부채 문제였다. 2009년 말 기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미국 132%, 일본 130% 등 OECD 평균이 134%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153%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빚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가계부채가 900조원을 넘었지만 소비에 중독돼 심각성을 모르고 있거든요. 휘발유 가격이 2천200원을 넘어가는데 너도나도 자가용을 몰고 나선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인데도 대중 인기에 영합해 누구도 심각성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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