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위치한 '오천 군자마을'. 안동말로 '외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광산 김씨 예안파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에는 광산 김씨 고택 20여 채가 들어서 있다. 마을 앞 골짜기에 호수가 보이고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풍광이 아름답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자 광산 김씨 후손들은 '외내'에 있던 문화재와 고가옥 등 일부를 약 2㎞ 떨어진 이곳 오천군자마을로 집단으로 옮겨 원형대로 보존했다.
이제는 주위의 한국국학진흥원, 도산서원,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 이육사문학관, 퇴계종택 등과 함께 안동의 주요 관광코스가 됐다.
◆'외내'에서 '오천'까지
안동에서 북쪽으로 도산서원을 향하는 35번 국도를 따라 약 20㎞쯤 가다 보면 길가 오른쪽에 군자마을이 있다. 조선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모여 살았고, 1974년 안동댐 수몰 때 이곳으로 옮겨왔다.
'외내'는 지금의 오천 군자리에서 2㎞ 정도 아래에 있었다. 지금은 안동의 한 지역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독립된 현이었던 해동 유학의 근거지 예안(禮安)이었다. 옛날 예안현은 동서가 60리, 남북이 30리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고을이었다.
군자마을 김방식(광산 김씨 예안파 18대 후손) 관장은 "수몰되기 전 '외내'는 낙동강이 굽이쳐 맑은 물소리를 내며 흘렀고, 희고 고운 모래톱도 펼쳐져 있었으며, 마을 뒤에는 태백산 줄기가 솟아 있었다"며 "봄에는 진달래, 철쭉이 붉게 피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 사이로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가을에는 오색단풍이, 겨울엔 흰 눈이 골짜기를 덮어 절경을 이뤘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농수 김효로(金孝虜'1454~1534)이다. 이후 장남인 운암 김연과 탁청정 김유 형제로 갈렸다. 후조당 김부필은 김연의 맏아들이다.
이 마을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을 '오천 칠군자'라고 불렀다. 후조당 김부필, 읍청정 김부의, 산남 김부인, 양정당 김부신, 설월당 김부륜, 일휴당 금응협, 면진재 금응훈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김효로의 친손과 외손들로, 퇴계 이황의 제자였다. '군자리'라는 마을 이름도 이들에게서 유래됐다.
조선 중기 문신인 한강 정구가 안동부사로 재임하면서 오천마을을 방문했을 때 "오천 한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감탄했다고 해 그 이후로부터 오천을 '군자리'라고 부르게 됐다.
칠군자 중 중심인물은 후조당 김부필(金富弼'1516~1577)인데, 퇴계 이황의 좌장 격 인물이었다. 후조당은 김효로의 옛집으로, 지은 지 오래되어 그 손자 김부필이 새롭게 고치고 당을 '후조'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후조당 현판은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이 친필로 적은 것인데, 그만큼 아낀 제자였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후조당은 슬하에 아들이 없어 아우 김부의의 하나뿐인 아들로 후사를 이었는데, 바로 입향조 김효로와 함께 불천위로 모셔진 근시재 김해(金垓'1555~1593)이다.
김해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의병대장으로 추대돼 안동, 예천, 군위 등지에서 활약하다 39세 나이로 경주에서 전쟁 중 병사했다. 김해가 생전에 남긴 많은 저서 가운데 '행군수지와 항병일기'는 임란사 및 지방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최성달 안동시역사기록관은 "후조당 윗대에 관찰사를 지낸 운암이 있었는데도 안동지방에서는 광산 김씨 예안파의 종가집을 후조당이라 일컫는다. 이는 벼슬보다 도덕, 학문을 더 우선시 여겼기 때문이다"며 "광산 김씨 예안파는 학문의 가풍과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는 정신을 자랑하는 가문이다"고 말했다.
◆600여 년의 역사와 전통, 수많은 문화재
오천 군자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후조당과 탁청정은 국가지정 문화재이며, 탁청정 종가와 광산 김씨 재사 및 사당, 침락정은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또 유물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오천 칠군자'를 비롯해 이 가문 출신의 인물들이 남긴 고서, 문집류, 교지, 호적, 토지문서, 노비문서, 분재문서, 각종 서간문 등이 전시돼 있는데, 이 중 고문서 7종 429점과 전적 13종 61점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요리책으로 선비 대감집의 음식문화를 적은 '수운잡방'과 고려시대 호구단자, 임란 때 의병장의 진중일기인 '항병일기', 전투지휘관의 복무지침서인 '행군수지', 병자호란 때의 창의록인 '매월일기', 충절을 지킨 선비의 평생기록인 '계암일기' 등은 군자리의 자랑이다.
이곳에 보관된 문헌과 유물은 한 가문이 600여 년 동안 한곳에 살아오면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도 이를 온전히 보존해왔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로 평가된다.
▷후조당(중요민속자료 제227호)
광산 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선조 때 후조당 김부필이 처음 건립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로 왼쪽에 6칸 대청을 두었다. 현판은 조선 최고의 학자 퇴계 이황의 필적이다. 대청 동쪽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튀어나온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이 더 있다. 이런 구조는 이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형식이며 고려말 조선초의 양식으로 건축사의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잡석기둥 위에 각주를 세워 만든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지금은 불천위 향사를 지낼 때 사용하고 있다.
▷탁청정(중요민속자료 제226호) 및 종택(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6호)
김효로의 둘째 아들 김유의 종가 건물로, 종택은 김유가 1541년에 건립했고 탁청정은 1544년에 세운 것으로 종택에 딸린 정자다.
정침은 민도리 홑처마의 'ㅁ'자형 기와집으로 정면 6칸, 측면 4칸으로 총 22칸이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정자의 이름은 김유의 호에서 유래했고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가 한석봉의 필적이다. 탁청정은 그 규모가 웅장하고 모양이 화려해 오랫동안 인근에서 이름을 떨쳤다.
▷광산 김씨 재사 및 사당(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호)
재사는 사당에 모신 조상을 위한 제사를 모실 때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는 곳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ㅡ'자형 건물로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구성돼 있다. 동쪽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창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ㄷ'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재사 뒤편에 자리한 사당에는 광산 김씨 예안파 입향조인 농수 김효로와 그의 증손 근시재 김해를 모시고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사당 앞에는 팔각기둥을 세우고 건물보다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퇴를 만들었다.
▷침락정(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40호)
이 건물은 영남 의병대장을 지낸 김해의 아들 김광계가 1672년에 세운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2칸은 마루이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만들었다. 출입문이 동서 양쪽으로 마주 세워져 있는데 동쪽으로 난 문은 윗부분이 반원형으로 되어 있어 작고 아담한 문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볼거리'먹을거리'숙박
오천 군자리 주변은 가는 곳이 역사 현장이고, 보이는 곳이 절경이다.
35번 국도를 따라 북쪽 도산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도 산림과학박물관, 도산서원, 가송마을 등이 나온다. 도산면사무소에서 오른쪽 산 아래로 난 작은 시골 포장길을 따라 퇴계종택과 퇴계 공원, 이육사 문학관 등이 들어서 있다. 안동댐 물과 모래사장, 주변 절경이 한데 어우러져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도산면소재지에 위치한 온혜온천에서 몸을 푹 담그면 피로가 싹 풀린다.
오천 군자리 인근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고택에서 1박은 필수다. 큰 방과 작은 방, 그리고 대청으로 구성된 후조당 종택의 별당과 사랑채에서의 고택체험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근 맛집으로는 도산면사무소 부근 몽실식당(054-856-4188)의 가정식백반을 추천한다. 고추'콩잎장아찌와 시골된장국, 코다리찜 등 토속적인 반찬들이 일품이고, 얼큰한 민물매운탕도 있다.
안동'권오석기자 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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