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絲蘿<사라>

5월은 챙겨야 할 날이 많아 무척 바쁜 달이다. 달력을 보면 큰 숫자 밑에 작게 쓰인 기념일이 어느 달보다 많다.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 성년의 날(5월 셋째 월요일로 올해는 부부의 날과 겹친다)이 있다.

이보다는 관심이 떨어지지만 11일은 입양의 날이고, 20일은 세계인의 날이다. 흔히 사월 초파일로 부르는 부처님 오신 날(28일)도 올해는 5월에 있다. 역사적으로는 5'16 군사정변, 5'18 광주 민주항쟁도 이달에 일어났다. 여기에다 가족의 생일이나 결혼과 같은 기념일까지 있으면 한 달 내내 물(物)과 심(心)이 고생하는 숨 가쁜 날이 다닥다닥 붙은 셈이다.

또 5월은 대학가의 축제의 달이고, 가정과 관련한 기념일이 많아 한 달 전체가 가정의 달이다. 하지만 이때쯤 연례행사처럼 쏟아지는 여러 통계를 보면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무섭다.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무너지면서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정의 해체 속도가 빠르고, 폐해도 심해서다.

그 첫 출발은 가정폭력과 이혼이다. 법원에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가정보호사건은 2009년 4천700여 건을 정점으로 다소 줄긴 했지만 매년 3천 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는 지난해 말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출입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신고를 하면 경찰이 가정 내의 사건에 대해 직접 강제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가정폭력이 잦고 심각해 단순 가정사라고 하기에는 도를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이혼과 관련한 지표 중에 유배우 이혼율이 있다. 한 해 동안 일어난 이혼 건수를 15세 이상 배우자가 있는 인구 1천 명당 비례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2011년 유배우 이혼율은 4.7로 2009년 5.2, 2010년 4.8보다 조금 줄었지만 아직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가정보호사건과 유배우 이혼율이 주는 것은 2008년 6월부터 시행한 이혼 숙려 기간 제도와 협의 이혼 상담제가 조금씩 정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정의 중심인 부부 관계가 폭력으로 얼룩져 이혼의 길을 걸으면 그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당장 자식 양육 문제가 불거져 비교적 경제력이 떨어지는 모자가정이 사회문제가 됐다. 요즘은 부자가정도 크게 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아이를 키우는 부자가정이 2009년 880가구에서 지난해 1천246가구로 41.6%나 늘었다. 3천527가구인 모자가정의 35.3% 정도지만 편견과 질시 때문에 아이 키우기가 더욱 어렵다고 한다. 또한 폭력이 심한 가정에서 자라거나 부모가 이혼하면 아이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여러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 편에 보면 극결(郤缺) 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진(晉)의 대부 서신(胥臣)이 기(冀)라는 땅을 지나다 들에서 일하는 극결을 만났다. 마침 극결의 아내가 새참을 가져왔는데 남편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며 두 손으로 공손하게 새참을 받들어 올렸다.

이에 극결도 똑같이 깍듯한 인사와 함께 예를 갖춰 새참을 받았다. 부부가 서로 손님을 대하듯 깍듯한 것(相敬如賓)을 보고, 서신은 왕에게 극결을 중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서신은 못마땅해하는 왕에게 '공경은 덕행이 모인 것으로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반드시 덕이 있다'고 설득했다. 그 뒤 극결은 많은 공을 세워 가장 높은 벼슬인 상국(相國)에까지 올랐다.

예로부터 부부를 사라(絲蘿)라 했다. 토사(兎絲)와 여라(女蘿)에서 따왔다. 토사는 새삼, 여라는 이끼 종류로 모두 기생식물이어서 서로 기대며 엉키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자신의 목숨이 달렸으니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절대 소홀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며 번식한다. 옛 시에 '그대와 혼인을 하니 토사가 여라에 붙은 것'(與君爲新婚 兎絲附女蘿)이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부뿐 아니라 가정은 사라 같은 존재다. 자신만 앞세우면 서로를 해칠 뿐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한다. 가정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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