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은 날것을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소금에 절여 고추장 양념에 쟁여 두었다가 먹으면 입맛을 되돌릴 수 있다. 좀 번거롭긴 하지만 역시 소금에 절인 것을 고추장을 푼 찹쌀 풀을 먹여 만든 가죽부각은 여느 안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귀한 맛을 낸다. 부각 안주로 술을 마실 때 막걸리 단지는 밑바닥 긁는 소리가 나야 하고 소주를 마실 때는 연신 "한 병 더요" 하고 고함을 질러야 한다.
봄나물 중에 가죽은 단연 최상이다. 묘한 맛과 향이 어우러져 기품마저 느껴진다. 예쁜 여인이 의상까지 잘 차려입은 것과 같다. 그래서 값도 비싸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한 묶음이 1만원 내지 1만5천원이다.
가죽에는 참가죽과 개가죽이 있다. 나는 아직도 명확히 구분할 식견이 없다. 밭 둥천에서 뜯어온 가죽을 보곤 "이건 개가죽이야, 못 먹어"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자고로 개자가 붙은 것들은 개장국 외에는 별로 쓸 만한 게 없다. '개 같은 자식'을 비롯하여.
가죽은 날것을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소금에 절여 고추장 양념에 쟁여 두었다가 먹으면 입맛을 되돌릴 수 있다. 좀 번거롭긴 하지만 역시 소금에 절인 것을 고추장을 푼 찹쌀 풀을 먹여 만든 가죽부각은 여느 안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귀한 맛을 낸다. 부각 안주로 술을 마실 때 막걸리 단지는 밑바닥 긁는 소리가 나야 하고 소주를 마실 때는 연신 "한 병 더요" 하고 고함을 질러야 한다.
고향집 서쪽 담 모퉁이에 서있던 두 그루의 가죽나무는 키가 엄청 컸다. 사다리를 놓고도 모자라 대나무 장대에 낫을 매 꺾어 내렸다. 가죽을 딸 때마다 동네 청년들이 자진해서 일을 거들고는 안줏거리로 한 묶음씩 얻어가곤 했다.
고향의 수영이네 집에는 가죽나무가 많다. 어린 나무들은 동쪽에 있고 굵고 튼실한 나무는 서쪽에 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내 짝이다. 수영이 엄마와 울 엄마도 두 살 차이 친구다. 그의 누나와 우리 누나도 둘 다 4학년일 때 우리 학교의 교사로 발령받아 온 친구 사이다. 수영이 엄마가 먼저 세상을 버렸고 5년 뒤 울 엄마도 총총히 뒤따라 가셨다. 지금도 두 엄마는 같은 공원묘지에 이웃하고 누워 고향 마을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수영이네는 옛집을 아직도 빈집으로 갖고 있지만 우리 집은 팔아먹고 없다. 해마다 봄이 오면 수영이는 제 집의 가죽을 꺾어 우리 집으로 갖고 온다. 올해도 요행히 도둑맞지 않은 가죽을 따와 누구보다 먼저 고향의 봄을 도시에 앉아서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쓴맛이 나거나 향이 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남들이 싫어하는 몬도가네 음식의 예찬자다. 이른 봄에 나오는 씀바귀는 쓴맛이 매우 좋아 삶은 뒤 찬물에 우려내지 않고 그냥 먹는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향채인 고수나물도 잘 먹는다. 처음 접하면 빈대 냄새 또는 쥐며느리 냄새가 나긴 하지만 자주 접하고 친해지면 이상한 마력에 끌린다.
산초(일명 제피)잎 고추장 무침도 산뜻한 명품이다. 상추 잎에 돼지고기를 싸서 먹을 때 산초잎을 얹어 먹으면 입안이 환해진다. 홍어도 그렇다.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그리고 묵은 김치 등 홍어 삼합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기개가 뻗쳐 있는 특출한 음식이다. 나는 홍어 맛이 너무 그리워 지금도 흑산도 선창가의 대폿집을 자주 떠올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맛과 향으로 먹을 것인지 안 먹을 것인지를 결정해 버린다. 도전 정신이 전혀 없고 칠전팔기란 말은 사전에만 있는 줄 안다. 친하기 어려운 사람과 친해지면 그 우정은 평생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모교인 해로고등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지 마라.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명예와 현명한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상대의 힘에 눌려 포기하지 마라. 상대가 아무리 압도적으로 우세한 힘을 가졌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머위의 여린 잎은 쌉싸름하지만 아주 맛이 있다. 그렇게 쓰거나 역겹지 않다. 머위는 항암제 또는 중풍 예방 식품으로 알려져 뒤늦게 각광받고 있는 나물이다. 머위 어린 잎 하나 짓이겨 계란 흰자를 풀고 청주 한 잔을 부어 홀딱 마시면 평생 동안 중풍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옛 어른들도 머위와 계란 노른자와 들기름을 함께 먹으면 중풍이 예방된다고 했다. 머위의 약효는 약리학적 검증이 이뤄졌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옛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게 없으니 밑져야 본전 아닌가. 머위는 봄나물이 아니라 약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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