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대선 출마 선언한 이재오 전 장관

"부패 청산 못하면 복지도 허망"…분권형 대통령제 도입해야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킹메이커'였다. 그는 9개월여 임기를 남겨둔 이명박 정권의 '2인자'였고, '실세'였다. 그러나 이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자의 반 타의 반' 미국과 중국에 머무르면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비운의 실세였다.

그런 그가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통령을 만드는 킹메이커는 직업이 아니라며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친정 체제로 재편된 새누리당에서 그는 '2인자'는커녕 비주류세력의 수장으로 자리 잡기도 어려울 정도로 위상이 급락했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로 대선 후보 경선룰을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분권형 개헌론 제기를 통해 박 전 대표가 독주하고 있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구도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면서 '비박(非朴)계'의 대표선수로 나섰다. 17대 국회 초반 원내대표와 당대표로 호흡을 맞춘 적도 있지만 '독재자의 딸'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독재자의 딸로)그렇게 용어를 간단하게 정리할 문제는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했지만 유신 이전에는 산업화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 대한민국의 가난을 해결하고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지요. 그런 점에서는 산업화 지도자의 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신 이후에는 혹독한 인권 탄압의 시대였다. 그것만 보면 누가 보더라도 '독재자의 딸'이다. 산업화 지도자의 딸인지 독재자의 딸인지는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평가를 역사에 맡기자고 한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한발 물러섰다. 그의 박 전 대표에 대한 공세는 정몽준 의원과 김문수 경기지사,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 비박주자들과 합종연횡을 통해 박 전 대표를 넘어서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대선가도에 들어선 이 의원을 서울 은평구 구산동의 이 의원 자택에서 만났다.

5선 의원이자 이 정부의 실세였던 중진 정치인의 거처치고는 소박했고 초라하기까지 했다. 이 낡고 좁은 집에서 30년을 살았다. 거실 한쪽에 자리 잡은 'Gold Star'(LG전자의 옛 브랜드) 브랜드의 낡은 에어컨은 이 의원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주역인 그가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단층집에서 산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 집 말고 다른 곳에 빌딩이라도 사놨겠지 생각하는 것이 부패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 집앞에 와서 내가 사는지 안 사는지 구경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권력을 잡으면 다 그렇게 (부패)하는 것으로 안다. 그 시대를 청산해야 한다."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가난한 대통령, 행복한 국민'을 화두로 내던진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다음 정권의 가치를 '반부패'로 잡았다.

"사회 곳곳에 문화처럼 스며 있는 부패를 없애고 청렴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처럼 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나라에 돈이 있으면 복지는 저절로 된다. 집에 돈이 있으면 남도 주고 하지 않느냐. 민주주의 국가는 발전하면 할수록 저절로 복지로 간다."

박 전 대표가 내세우고 있는 '복지'보다 반부패가 앞선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부패로 인한 비용이 300조 원에 가깝다고도 했다. 1년 예산이 부패로 날아가는 셈이다. 결국 부패를 청산하지 못하면 복지도 허탕이라는 논리다.

그는 부패 청산을 제도적으로 하겠다며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했다.

"지금껏 말로만 부패 청산하겠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나눠주면 제도적으로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음 대통령은 '가난한' 대통령이다. 권력을 내각과 국회에 분산하고 지방에 주고 인사권도 총리와 내각에 나눠주면 된다. 대통령 집무실도 종합청사에 두고 청와대를 역사박물관으로 만들고, 지금 이 집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지금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는 진심으로 가난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꿈을 "지금까지의 대통령 시대가 한 시대를 보냈다면 이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여는 그런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인간의 냄새가 나는 '권력도 가난하고 생활도 가난한' 그런 대통령을 꿈꿨다.

그는 어김없이 임기 말 측근 비리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이 정권에 대한 무한책임론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에게 이 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해 물었다.

"저는 이 정부의 공과를 다 안고 간다. 공(功)은 공대로 이어받고 과(過)는 과대로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는 등 이렇게 해서 다음 정권으로 이어가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잘한 점은 잘한 대로 이어받고, 못한 것은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과하고 이렇게 공과를 안고 가야 한다. 사람 도리가 그렇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 찍어달라고 소위 '주동'을 한 사람이 이 정부가 잘못한 거 있다고 픽 돌아서서 비판하고 단절하자고 하면 국민들이 '저렇게 의리 없는 사람이 무슨 대통령을 하려고 하느냐' 이렇게 하지 않겠는가. 내 운명은 이 정권의 공과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이 정권을 함께한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 이 정부가 그래도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헌정 사상 최고로 높이고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극복한 것이 공(功)이라면 인사 문제와 소통, 양극화 문제, 일자리 문제는 잘하지 못했다."

대권의 꿈은 언제부터 꾸기 시작했을까.

"정치를 하면 누구나 그런 꿈을 갖고 있다"고 말을 꺼낸 그는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 나 대신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직접 해야 되겠다는 것을 미국에 가 있으면서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국민들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게 됐다. '이재오' 같은 사람이 대통령 해야겠다고 판단하면 내가 대통령 하는 것이다. 다만 홍보가 덜 되거나 해서 안 찍어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야지…."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간다"고 말했다. 경선에 끝까지 참여한다는 뜻인지, 완전국민경선을 받아주지 않을 경우, 다른 방식으로 대선에 나설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그는 "당을 장악해서 자기 당을 다 만들어놓고 그 경선룰로 경선하자고 하면 누가 하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참여 여부는 그때 가서 판단할 일"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오픈프라이머리로의 경선룰 변경에 대해 그는 "지금처럼 해서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가. 표의 확장성과 포용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경선룰을 바꾼다고 해도 (경선)결과가 달라질 게 없다고 하더라도 그 국민경선과정에서 국민의 더 많은 관심과 비판과 참여를 통해 본선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지부동 상태인 경선룰 변경 가능성에 대해 그는 국민이 바꾸자고 하면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당권을 가진 세력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국민을 상대로 호소해서 국민의 힘으로 경선룰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디도스 사건 이후의 정치적 위기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를 견인한 박 전 대표의 역할은 평가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친박 측의 지적에 그는 "당을 화합하고 건전한 민주정당으로 회복하라고 비상대권을 준 것이지 '박근혜당'을 만들라고 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친이도 박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당이 어려우니까 총선 경쟁력을 높이고 본선 경쟁력을 높여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도록 당의 틀을 새롭게 만들고, 당을 건전하게 복원해 달라고 한 것이지 그것을 기회로 자기 당으로 만들라고 기회를 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 공천 이야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4년 전에 우리(친이)가 잘못했다고 치자. 그때는 대선이 끝나고 총선을 치렀고 이번에는 대선을 앞둔 총선이다. 4년 전 잘못을 딛고 넘어서서 포용하고 함께 간다면 누가 더 지도력이 돋보이겠는가. 아주 편협하고 왜소하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저 지도력으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는 그때는 친박계도 50명이나 공천을 줘서 당선시켰지만 이번에는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자신과 가까운 친이재오계 인사들이 대거 낙천한 것에 대한 불만이리라.

4년 전과 똑같이 보복한다면 정치에 발전이 없으며 악순환의 연속이라면서 그 고리를 끊는 것이 지도자의 능력인데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에게 실망을 했다는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 등 야권 후보들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잘 알지 못한다며 평가를 하지 않았지만 "한 시대의 지도자는 국민의 손때가 묻어야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국민에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때로는 잘못했다고 물러나라 욕도 먹고 박수도 받고 그러면서 국민에게 각인돼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랬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 역시 정치지도자로서 굴곡을 겪으면서 국민의 애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이 의원 역시 킹메이커로 잘나가다가 총선에서 떨어져 날개가 꺾였고 다시 중진 정치인으로 부활하는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셈이다.

그는 경북 영양이 고향인 자신에 대해 TK 지역 지지도가 변변찮은 것에 대해 섭섭해 하는 듯했다.

"박 전 대표가 없다면 이재오를 평가하겠지만 세상사가 다 그런 것 아니냐. 고향에서 국회의원 했다면 그런 소리를 듣지는 않겠지만 서울에서 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나 같은)정치인은 흔치 않다…."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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