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1770년/정승모 글/강영지 그림/보림 펴냄
1770년 영조 46년, 정월 대보름 전날 초저녁 낙산 아랫마을에는 아이들이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제웅(짚으로 엮은 인형)을 달라고 소리친다. 요즘은 보기 힘든 액막이 풍속이다. 과천 사는 최 서방은 한밤중부터 제 키만큼 높은 땔감을 지고 한양으로 향했다. 서너 시간을 꼬박 걸어 도착한 남대문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인다. 종각의 종이 33번 울리고 성문이 열리며 한양의 하루가 시작된다. 땔감이나 채소를 팔러온 성 밖 사람, 등짐을 지고 지방에서 올라온 보부상, 조랑말을 탄 시골 선비도 있다. 장을 보러 나온 양반집 노비와 두부 장수도 바쁘게 움직인다.
남산 기슭 남촌에 사는 박 생원은 아침을 먹기 전 맑은 한 잔을 들이켰다. 대보름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는 귀밝이술이다. 오전 7시가 넘자 관청들이 늘어선 육조거리에 관리들이 모여든다. 공무원 출근 시간은 진시인 오전 7~9시다.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양, 1770년'은 240년 전 한양으로 떠나는 타임머신이자 여행 길라잡이다. 조선 왕조의 문물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조선 후기 활기 넘치던 한양의 모습을 그림책에 담았다. 구중 궁궐 속 임금부터 개천 다리 및 거지까지, 관청이 늘어선 육조거리에서 술집'밥집이 늘어선 뒷골목까지 살아있는 한양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세월도 풍경도 다르지만 사람들의 행동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이나 청나라에서 들여온 도자기를 명품이라며 애지중지하는 양반의 모습이나 부유한 상인들이 오가는 종각네거리의 흙을 부뚜막에 바르며 부를 열망하는 가난한 이들의 삶이 그렇다. 대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면 한양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나선다. 이날만큼은 통행금지가 없다. 개천가에는 밤새도록 다리밟기를 하는 행렬이 이어진다. 58쪽. 1만5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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