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구는 내친구' 덕분에…학생과 교사는 친구가 되었다

대구 능인중 스승의 날 '사제동행' 체험

15일 오후 대구 능인중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대구시민야구장을 찾아 신나게 프로야구를 즐기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5일 오후 대구 능인중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대구시민야구장을 찾아 신나게 프로야구를 즐기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스승의 날인 15일. 대구 능인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3학년 학급 담임교사들은 아주 뜻깊은 스승의 날 나들이에 나섰다. 개교기념일이라 학교가 문을 닫은 이날, 320명의 학생과 교사 12명이 향한 곳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린 대구시민야구장.

◆신나게 응원하고 즐겁게 놀아보자

사제지간이라는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관계는 학생이 교사에게 인사하고, 교사가 참석 학생의 인원을 파악하는 것까지였다. 그 다음은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 신나게 응원하며 즐겁게 놀아보자"였다

학교의 울타리, 교실의 벽을 뛰쳐나와 확 트인 야구장에서 생애 처음 가져보는 교사와 학생들의 단체 관람은 이렇게 시작됐다. 멋진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힘찬 응원가로 목을 풀며 그들은 하나가 됐다. 교사들은 표정없는 학생들이 모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봤고, 학생들은 근엄하던 담임교사가 마치 친척 형이나 누나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스승의 날이었지만, 그 흔한 카네이션 하나 단 교사가 없었다. 교사와 학생들의 손엔 똑같이 치킨 조각이 담긴 컵 하나씩이 쥐여져 있었다. 스승의 날 노래를 대신해 삼성 라이온즈의 응원가를 불렀다. 학생도 웃고 교사도 '최강 삼성'을 함께 외쳤다.

교사'학생간 보이지 않던 벽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1반 담임 정기화(55) 교사는 "스승의 날, 이런 뜻깊은 선물은 처음 받는다"고 말했다. 12반 담임 김한수(36) 교사도 "학생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며 스승의 날이 갖는 뜻을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스승의 날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날이 아니라 교사가 해맑고 튼튼하게 성장하고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교사로서의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날"이라며 의미부여를 했다.

◆야구는 내 친구-선생님과 함께 야구장으로

이날 행사는 '야구는 내 친구' 덕분이었다. 능인중학교의 '사제 동행'은 삼성 라이온즈와 대구시교육청, 매일신문사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건강프로젝트 속 '선생님과 함께 야구장'으로라는 프로그램이 갖게 해준 시간이었다.

지난 4월부터 삼성은 홈 경기가 열리는 날, 대구지역 중학생과 그 반의 담임교사를 무료로 초청해 야구장 데이트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벌써 5천500명의 학생이 야구장을 찾았다. 앞으로도 1만7천 명의 학생과 교사가 더 다녀갈 예정이다.

'야구는 내 친구'는 지난해 말 대구에서 발생한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학교폭력 근절과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에게 건전한 문화와 인성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입시 스트레스와 폭력, 외톨이화 되어가는 청소년들을 운동장으로 나오게 해 인기 스포츠인 야구로 청소년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건전한 스포츠 확산, 밝고 활기찬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삼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우용득'권영호'이선희 스카우트가 재능 기부에 나서는 '토요 스포츠 데이 야구교실'과 학교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야구를 체육시간을 활용해 체험해보는 야구수업, 선생님과 함께 야구장으로 등 모두 3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호응은 기대 이상이다. 토요 야구교실에는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캐치볼과 타격 연습 후 미니 경기를 하면서 청소년들은 스포츠맨십을 체험하고 있다. 야구장 나들이가 있는 날은 입시의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는다. 수업을 마치고 곧장 향하던 학원 길도 이날만큼은 해방이다.

◆'사제동행'으로 학교 분위기가 바뀐다

들뜨는 건 학생만이 아니다. 능인중 손성욱(50) 교사는 "한 달 전 학생들과 야구장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괜히 흥분이 됐다. 교사생활 26년째지만 제자들과 손을 잡고 야구장을 간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했다"고 말했다. 손 교사는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학생들을 야구장에 불러모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사와 학생의 얽매인 관계를 벗어나 똑같은 시각으로 야구를 보며 함께 응원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보람있는 일이다"면서 "야구장에 오는 날까지 그런 신나는 상상을 하며 기다렸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이날 학생들의 웃음에 특히 값진 의미를 부여했다. 아직은 좀 더 뛰어놀고, 친구와의 사귐이 더 중요한 중학생들. 하지만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사라지고, 왕따와 폭력이 청소년 시기를 멍들게 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이기준 군은 "깐깐하고 무섭던 선생님이 어린아이들처럼 소리 높여 응원하고, 신나게 손뼉치는 모습을 보니 학교에서와는 달리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현 군은 "스트레스를 확 날린 하루였다"며 "학교로 돌아갔을 때, 야구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제동행은 경기가 종료되며 3시간 30분 만에 끝났지만 '야구는 내 친구'가 만들어줬던 아주 특별했던 스승의 날 선물은 교사나 학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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