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비상대책위원회

"지금부터 비상대책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건 시각 20시 30분에 발생한 폭탄 테러 협박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요일 밤 방영되는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 코너가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이 코너는 그야말로 입으로 하는 개그(gag)의 극치를 보여준다. "야! 안 돼~" "고래? 사람 불러야겠다"는 유행어는 국민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다. 출연자들의 재치도 압권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관료제의 폐해와 비효율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무척 돋보인다. 긴박하게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고위 관료들이 비상대책회의를 한답시고 모여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고 "안 돼"라고 외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은 어디에서 많이 봐왔던 장면이 아닌가.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행태상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얘기다.

요즘에는 비상대책위원회 전성시대다. 개그 프로그램이 이를 선도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치권 이곳저곳에서 비대위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르고 나니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더욱이 심각한 내분에 휩싸인 통합진보당은 한 정당 내에 2개의 비대위가 생길 것으로 보여 한 편의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비당권파로 구성된 '혁신비대위'가 이미 구성돼 활동 중인데도 구 당권파가 이에 대항해 '당원비대위'를 새로 발족시킬 모양이다.

비대위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정당, 노동조합, 단체 등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생기는 한시적인 기구이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웃기지도 않은 비대위도 있지 않았는가. 한국 정치권에 비대위가 난무하는 것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폭탄 같은 문제점을 늘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혹자는 정치권은 원래 정상적인 곳이 아닌데 비대위 체제는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진보라는 이름을 내걸고 국민보다는 개인, 전체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만 충실한 인물들이 당권을 잡아왔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비대위 체제로 잘못을 반성하고 구태를 쓸어내야 하겠지만, 개그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못한 결과를 보여줄 것 같기도 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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