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양(57) 임재양외과의원 원장. 그는 의료계에서 이단아로 통한다. 좋게 표현하면 기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별종인 셈이다. 그는 유방전문병원의 개척자다. 다른 의사들이 백화점식 진료를 하고 있을 때 그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유방이라는 특정 분야를 전문화시킨 유방클리닉을 열었다. 그는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대구경북 인의협) 창립 멤버로 제도권을 향해 쓴소리도 거침없이 한다. 2000년 의약 분업을 둘러싸고 의사들이 파업을 했을 때, 대구경북 인의협 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아 의사들 사이에서 공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임 원장이 걸어온 행적을 살펴보면 그는 다수의 편이 아니라 소수의 편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의료계에서 비주류로 분류된다. 옳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태도는 세상과 소통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임 원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일상 속 반란 이야기를 들어봤다.
◆의사 생활의 시금석이 된 전주 예수병원
임 원장은 경북대 의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가 수련을 한 병원은 전주 예수병원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예수병원에서 수련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의사 생활은 출발부터 독특했음을 알 수 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해 휴교령이 내려졌을 때 병원 유람을 다녔습니다. 우연히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예수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외국 의사들이 첨단 시스템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에 나가지 않고 선진 의료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본과 졸업 후 1981년 예수병원에 수련의 지원서를 냈습니다."
그는 예수병원에서의 수련 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1980년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전라도 땅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경상도 출신 의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는 예수병원을 선택한 것은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5년간의 예수병원 수련 생활을 통해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을 닦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의사들이 한국에 와서 환자를 보는데, 점심시간까지 반납하며 진료를 해요. 의사 중심이 아니라 환자 중심인 셈이죠.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의학 교과서에 이름이 올라 있는 유명 의사들이 여름이 되면 휴가를 얻어 예수병원에 의료 봉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것도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의료 봉사를 왔어요. 휴가 기간만이라도 일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와 달리 일을 즐기며 휴가를 보내고 있는 외국 의사들을 보고 문화적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수련 생활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진정한 봉사 활동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전문병원 시대를 열다
임 원장은 1990년 경남 창녕에서 첫 개원을 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극구 반대했다. 시골에서 개원을 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창녕에 외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 주목해 개원을 강행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1년 만에 일요일에도 진료를 봐야 할 만큼 환자들이 넘쳐났다. 개원하면서 받은 대출금도 갚고 집도 장만했다. 소위 말해 먹고살 만한 상태가 됐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가득 차 있었다. "병원이 안정기에 접어드니까 일에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골프도 치고 쇼핑도 해 봤지만 충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93년 오세민 원장이 서울 강남에서 유방클리닉을 개원한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습니다. 당시에는 특정 분야를 특화해서 진료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기발한 발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오 원장을 만나 상담을 하고 오 원장과 함께 유방암에 대해 공부도 했습니다."
그는 1995년 잘나가던 창녕 병원을 접고 대구 범어네거리에 유방클리닉을 개원했다. 이번에도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환자도 없는 유방클리닉을 하면 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배수의 진을 친다는 각오로 개원을 했다. 개원 후 3년 동안은 그야말로 파리를 날렸다. 그러다 유방암 환자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유방클리닉을 찾는 사람이 늘기 시작하면서 병원이 정상 궤도에 올라선 것. "개원 당시 연간 3천여 명의 유방암 환자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1만8천여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저를 필두로 지역에서도 유방클리닉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원한 창녕 병원에 이어 유방클리닉까지 성공을 거두자 임 원장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특히 임 원장은 시대를 앞서 유방클리닉을 연 인물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앞을 내다보는 탁월한 안목을 가졌다기보다 주류보다 비주류를 선호하는 성향을 타고났다고 했다. 임 원장의 말을 빌리자면 모태 비주류가 제대로 사고(?)를 친 셈이다.
◆휴가 내서 가족과 함께 의료 봉사
엄지호 경상북도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은 임 원장을 두고 "저개발국 빈곤층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앞장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런 평가를 듣게 된 이유는 예수병원에서 보고 배운 것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여름휴가를 이용해 해외 의료 봉사를 다녔다. 의료 봉사를 갈 때에는 늘 가족도 함께했다. 외국 의사들이 예수병원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방법 그대로다.
그는 멕시코'인도'동티모르'인도네시아의 오지를 다니며 인술을 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07년부터 해외 의료 봉사를 중단했지만 여건이 되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의사가 찾아가서 주사를 놔주는 일회성 의료 봉사는 진정한 의료 봉사가 아니라 의사의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의료 시설이 열악한 곳에 가서 의료 환경을 바꾸어 주는 것이 진정한 의료 봉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완비되어야 합니다. 시스템이 갖춰지면 다시 떠날 생각입니다."
임 원장은 봉사 활동을 한 이력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과거에 한 봉사 활동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에 저를 봉사하는 의사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봉사 활동은 하다가 중단할 수 있고 중단했다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과도한 관심은 오히려 봉사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환자 중심의 의료 문화 강조
임 원장은 진료를 할 때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다.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 상담을 하고 진료를 한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을 한다. 항생제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며 수술보다는 보존 치료를 우선한다.' 환자가 중심이 되는 의료 문화를 만들기 위해 그가 정한 것들이다. "당연히 환자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료 문화가 의사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 배경에는 의사와 환자, 제도가 만들어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원인은 복잡하지만 이를 풀어야 할 주체는 의사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의사들이 나서야 순리대로 풀립니다. 기득권 세력이 솔선해서 바꾸면 출혈 없이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비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의해 변화가 발생하면 큰 출혈이 뒤따릅니다."
그는 한 달 후 대구 삼덕동으로 병원을 옮긴다. 그가 대로변에 위치한 지금의 병원을 삼덕동 주택가로 이전하게 된 이유는 삼덕동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환자 중심의 진료를 펴기 위해서다. "삼덕동 병원은 8년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삼덕동은 도심 속에 있지만 한옥들이 남아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환자 중심의 의료 문화를 만들어가기 좋은 곳이죠. 지금 짓고 있는 한옥 병원에는 진료실뿐 아니라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됩니다. 환자들이 좀 더 편하게 진료를 받고 치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생각입니다."
◆의술은 커뮤니케이션
임 원장에게 의술은 기술이 아니라 소통이다. 그래서 그는 환자 교육에 남다른 신경을 쓴다. 환자들에게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교육하다 2년 전 채식주의자가 될 정도로 환자 교육에 열성적이다. 또 그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글쓰기까지 배웠다. 그는 현재 경북대 의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을 만큼 글 잘 쓰는 의사로 알려져 있다. 요즘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는 골목 투어도 일찌감치 시작했다. 걷는 것이 좋아 6년 전부터 서울과 대구의 주요 골목을 답사하며 방대한 자료도 축적했다. 골목 투어 자료를 엮어 책으로 낼 생각도 갖고 있다.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은 소통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지 않고 걸으면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 풍경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거죠. 환자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와 환자 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 환자가 병에 대해 스스로 깨닫게 되면 치료 효과가 높아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거창한 일을 하는 의사가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을 잘하는 의사입니다." 임 원장은 병만 보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환자들의 마음까지 보는 동네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삼덕동으로 병원을 이전하는 또 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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