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걷고 싶다. 아스팔트 위에서 죽기 살기로 내달려야 하는 도심의 길은 각박하기만 하다. 때로는 시간의 구속 따위는 던져두고 들풀이 이슬을 머금는 호젓한 시골길에서 어슬렁거리고 싶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로 산 오늘은 더욱 그렇다.
범안로를 달렸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려면 운전자가 행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동전 600원을 가죽 통에 넣는다. 또 하나는 교통카드를 전자기판에 대는 것이다. 늘 그랬듯 지갑 안에서 교통카드를 꺼냈다. 그 다음, 카드를 가죽 통 안으로 던졌다. 벌떡 일어서야 할 차단 막이 꿈쩍없다. 골몰히 다른 생각을 했기에 카드를 가죽 통에 던진 사실조차 몰랐다. 아뿔싸! 어처구니없는 실수다. 순간 머리를 부딪힌 듯 멍해졌다. 가죽 통 안에 있는 카드를 끄집어내기 위해 얼른 차에서 내렸다.
한 대씩 순조롭게 빠져나가야 할 순간에 앞 차가 어물쩡대면 어김없이 경적을 울리는 급한 세상이란 것을 나는 잘 안다. 뒤차를 향해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현한 것도 모자라 엉거주춤 허리까지 숙여 보였다. 다행히 경적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장면을 뒤차 운전자는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웃음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이럴 땐 신속히 내빼야 하는 것이 상책이다. 후방유리로 뒤차를 힐끔 쳐다보았다.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차까지 히죽히죽 웃는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마음은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을 정도로 좁아져 있는 듯하다. 누가 더 완벽하고 빠른가 하는 힘겨루기를 숭상하는 세상에서 실수를 받아줄 만한 마음의 여백이 전혀 없어서 일까. 숨이 막힌다.
실수를 하기에 인간이 아닐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몸속엔 기름이 아니라 뜨거운 피가 흐르고, 배터리가 아닌 심장이 두근두근 살아 뛴다. 사람은 천사도 아니다. 불완전하다는 의미다. 이것을 빨리 자각하는 것이 곧 행복의 시작이다. 인간이 실수 많은 존재임을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타인의 실수와 약점도 용납하지 않을까.
차는 다시 범안로로 진입한다. 어느새 노을이 길 위에 흩어져 있다. 민망해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던 내 얼굴빛이 생각나 주섬주섬 노을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준 뒤차 운전자에게 감사의 뜻으로 이 노을 한 잔을 건네고 싶다.
톨게이트는 여전히 말이 없다. 교통카드를 전자기판에 다소곳이 댄다. 그날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음이 난다. 어둑어둑 넘어가는 태양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내가 가야할 길을 살포시 비춰 준다. 오늘 내가 어루만진 길과 또 어루만져야할 길 사이에 실수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이상렬 수필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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