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라는 유명한 도박사가 병을 앓아오다 마침내 임종을 맞게 됐다. 의사가 마지막 진단을 하면서 침통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 여덟 시를 넘기기가 힘드시겠습니다.' 그러자 병상에 누워 있던 당대의 노름꾼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선생님, 내기할까요? 만약 내가 9시까지 살아 있으면 선생님이 5달러를 내셔야 합니다.'
마약이나 담배는 그나마 끊을 수 있어도 도박만큼은 죽을 때까지도 끊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다.
부처님 오신 날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조계종 일부 스님들의 도박 파문이 원로 스님들의 수습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마무리 뒤끝이 개운찮아서다. '개운찮은 뒤끝'이란, 입으로는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참회 드린다'면서도 말꼬리엔 수도자답지 않게 구차한 변명을 단 걸 말함이다.
승단의 규율과 법도를 수호하는 총무원 호법부의 부장서리라는 스님의 변명이 파문을 더 키워버린 것이다. 그 스님의 변명(MBC 라디오 인터뷰 )은 이랬다.
'진술서(도박 연루 스님들)를 받아보니 전체 판돈이 400만~500만 원에 불과하더라. 억대 판돈이란 보도는 전혀 잘못된 것이다.' '스님들에게는 여러 형태의 놀이 문화가 있는데 (이번 승려들 도박은) 치매 예방을 위한 내기 문화 겸 심심풀이다.'
그분의 인터뷰를 요약하면 판돈 400만 원 정도는 큰 도박이 아니고 고스톱 노름은 치매 예방을 위한 건강 놀이요 심심풀이라는 논리다. 판돈 400만 원쯤 큰 문제될 게 없다는 투의 해명은 평소 도박, 술, 담배로 얼룩져 있었던 일부 문제 스님들의 고스톱판이 어느 정도 대담하고 어지러웠는지를 짐작게 한다. 도박 스님들이 개인사업이나 노동판에서 일해서 벌지 않은 한, 판돈의 상당 부분은 신도들이 낸 시줏돈이나 공양미로 얻은 돈이라 봐야 한다. 단돈 100원이라도 시줏돈이 노름판 판돈에 섞인 개연성이 있다면 참회의 해명은 처절하리만큼 더 진지해야 한다.
승가 수도자들이 벌인 도박의 도덕성 기준은 판돈의 액수 크기가 아니라 그 돈이 어떤 돈이냐는 데도 초점이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반성과 참회도 그런 관점에서 나와야 진정성이 있다. 그런데 무슨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지 말꼬리에 구차한 궤변을 매달아 국민의 불신만 더 키워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고 날씨가 더 더워지면 곧 사찰마다 하안거(夏安居)가 시작된다. 하안거의 면벽정진(面壁精進)과 참수행(修行)이야말로 정신세계를 맑게 밝히는 수도의 길이다. 세속에서 수백만 원의 판돈이 걸린 잡기(雜技)만 즐겨도 치매 예방이 되고 정신이 맑아진다면 절을 버리고 투전판에서 도(道)를 찾겠다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극소수 스님들의 탈선을 부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 앞에 공개된 참회의 해명에서도 뼈아픈 반성의 진정성이 안 보임으로써 여전히 국민 가슴속에 찌꺼기로 남아 있게 될 종교 불신을 걱정하는 것이다.
지금 그렇잖아도 나라 꼴이 궤변과 꼼수로 제 잘못을 피해 나가려는 거짓됨이 무한대로 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진보당 일부 구 당권파들의 온갖 궤변과 꼼수, 전직 대통령 형의 수백억 뭉칫돈 의혹 같은 부패는 우리 사회가 어느새 속임수와 궤변, 거짓 꼼수가 뿌리 깊이 퍼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 때 세속의 거짓과 궤변의 속임수와 부패를 씻고 깨우쳐 줘야 할 종교계마저 함께 곪으면 이 세상은 치유할 약조차 없는 병든 세상이 된다. 도박 스님들은 고스톱 교훈 9개 조(?)를 놓고 이번 도박 파문을 깊이 성찰해 보라.
한 번 실수가 얼마나 큰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깨닫는 '낙장불입'. 이기적인 무모한 모험으로 남(종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경계하는 '독박, 승부 정신과 배짱은 좋은 것이되 욕심이 넘침을 경계하는 ?쓰리 고', 그리고 적절할 때 그만둘 줄 아는 욕망 절제의 미덕을 가르치는 '스톱'….
일 주일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우리 불교계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참수행의 깨달음으로 거듭나 세상 거짓 궤변을 치유하고 막아주는 멘토가 되기를 당부드린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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