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난 채 길을 가다가, 작은 풀잎들이 추위 속에서 기꺼이 바람맞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두고 마음 풀었습니다.(이철수의 '길에서')
이제 책쓰기를 말하려고 한다. 책쓰기가 뭘까? 물론 책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고 나니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책쓰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것이 있다. 앞으로 책쓰기에 담긴 그 많은 별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책쓰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일차적으로 책을 사서 읽기만 하는 소비자의 단계를 넘었다. 아이들은 생산자와 창조자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디자인했다. 과연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하는데 관심을 두었던가? 열심히 공부하라고는 하면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는 강요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책쓰기는 바로 그러한 교육에 대한 반성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이 그대로 담긴 교육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이철수의 판화집의 판화에 담긴 위의 글을 보고 쓴 광고 디자이너 박웅현의 글은 이렇다.
화가 나서 걸어가고 있는데 아주 추운 날 작은 풀잎들이 바람 맞으면서 견디고 있는 걸 본 겁니다. 그 풀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추위와 바람이 얼마나 야속하겠어요. 그런데 화를 안 내잖아요. 그냥 견디잖아요. 그걸 보고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화를 내서 뭘 하겠어' 생각을 했다는 거죠. 이게 좋아요. 이런 것들이 좋아요. 저도 요즘 인터뷰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냥 "견딘다"라고 답합니다.('책은 도끼다' 중에서)
책쓰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두 사람의 글을 생뚱맞게 인용한 이유는 뭘까? 그 글 속에 책쓰기를 하는 가장 본질적인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쓰기는 견디는 힘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힘들다. 그것을 지켜보는 어른들도 힘들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른들은 힘들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들도 물론 힘들다. 그렇다. 어른이든 아이든 사람들은 힘들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삶은 힘든 길이다. 책쓰기는 그 힘든 길을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
화가 나서 걷고 있는데 작은 풀잎들이 바람을 맞으면서 견디고 있는 풍경을 본다. 아이들은 그와 같은 풀잎이다. 서로 다른 풀잎들이 바람 속에서 견디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풀잎인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바로 책쓰기다. 책쓰기는 자신이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는 결과보다는 그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더욱 아름답다. 책쓰기를 하면서 나도 이젠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 '힘들 때 어떻게 하냐?'고 하면 '견딘다'고 대답하는 법을.
누구에게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걸어가는 길 위에서 주어지는 행복을 누릴 권리도 있다. 중요한 것은 꿈을 기억하고 행복을 누리는 마음 그 자체다. 책쓰기는 바로 그 마음을 담는다. 지금 우리는 길을 걸어가기가 너무나 힘겹다. 책쓰기는 그 힘겨움도 담는다. 힘겨움을 책쓰기에 담는 순간, 힘겨움은 스스로 풀린다. 그리고 그 힘겨움을 견딘다. 더불어 책쓰기를 하면서 마음을 공유하는 순간, 나도 사라지고 너도 사라지면서 우리가 된다. 그것이 소통이고 나눔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꿈을 지니고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품에 안고 싶다. 나아가 그런 내 꿈을 타인과 공유하고 내 행복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그것이 단지 꿈일 뿐일까? 아니다. 책쓰기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든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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