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피렌체의 귀족 가문에서 1483년에 태어났다. 법률을 공부하고 성직자가 되길 원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삶의 방향을 틀어 서른 살에 스페인 아라곤 왕국의 피렌체 대사가 됐다. 프란체스코 구이차르디니는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섬세한 관찰 능력과 분석력을 발휘했고 이 재능은 그를 나중에 역사가로 만들었다.
뛰어난 외교관이자 정치가였으며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는 피렌체 정부와 메디치 가문과 밀접한 관계였던 교황청을 위해 일했다. 메디치 가문 출신인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신임을 받은 그는 당시 교황과 긴장 관계에 있던 프랑스 등과의 잦은 전투와 복잡한 역학관계를 잘 헤쳐나갔다. 자신과 달리 낮은 신분계급 출신이지만 탁월한 행정가이자 정치 이론가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와는 평생 우정을 이어갔다.
정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에 대해 비망록과 논문을 썼고 이를 바탕으로 만년에 16세기 중반 시기를 객관적이고 능숙하게 다룬 역사서 '이탈리아사'를 썼다. 그는 교황을 위해 일하면서도 교회에 비판적이었으며 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격동과 침략의 시대를 산 처세의 방편이었고 처세서 '리코르디'도 남겼다. 1540년 오늘, 58세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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