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당신의 언어생활은 몇 점입니까?

작가로 일하다 보면, '이게 맞춤법에 맞나요?' '어느 게 표준어인가요?'란 질문을 흔히 받게 된다. 글을 가지고 먹고 놀고 일하는 직종에 있으니 남들보다는 조금 더 표준어에 익숙한 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이나 질문을 마주할 때는 어색한 미소가 번지거나, 마른 땀이 나는 경우가 더 많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무식이 탄로 나는 순간이요, 작가란 직업에 대한 신뢰마저 땅에 떨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8월, 새로 표준어로 반영된 39개의 단어들에 대해서는 더욱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짜장면'. 한동안 입술에 힘을 최대한 빼고 부드럽고 느끼하게 '자장면'을 중국집에서 수줍게 외치던 기억이 있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공식적으로 중복 표준어로 인정한 이후로 자신 있게 '짜장면'을 외쳐서 좋다.

이외에도 '맨날, 간지럽히다, 쌉싸름하다, 손주, 남사스럽다, 오손도손, 메꾸다, 어리숙하다'도 역시 같은 시기 표준어로 인정됐다. '표준어 아니었어?'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전까지는 '만날, 간질이다, 쌉싸래하다, 손자, 남우세스럽다, 오순도순, 메우다, 어수룩하다'가 앞선 단어들을 대신하는 표준어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간극은 표준어라는 것이 1988년에 표준어 규정으로 고시를 한 후에 지금까지 따로 개정이나 추가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산이 바뀌는 데 10년이 걸린다는데 지난 25년 넘게 언어생활에 변화가 없었으랴! 하지만 언어는 사회적인 규범이기 때문에 표준어 목록을 자주 추가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 못 된다. 다만 지난해의 경우는 실생활에서 활용 빈도와 자주 쓰이는 형태 등을 인정한 사례들로, 규범과 실제 사용의 차이에서 언어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그리고 추가된 고마운 표준어 하나는 '먹거리'다. '읽을거리'는 '읽거리'가 될 수 없고 '볼거리'는 '보거리'가 될 수 없듯이 '먹거리' 또한 '먹을거리'로 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먹거리'는 유난히 널리 활용되고 있던 단어라 쓰고도 어색할 때가 많았다. 답답할 때 작가는 검색의 달인이 된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먹거리'라는 단어는 1957년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 사무국장이던 김민환 씨가 영어 'FOOD'에 해당하는 우리말로 처음 제안해 탄생됐다는 것이었다.

이분은 '식량'이라고 하면 양곡만을 가리켜 우리 식량 정책이 쌀 위주로 흐를 수 있다고 판단, 이 폐단을 없애고자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말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여기고 '식량'이라는 단어가 포괄하지 않은 우유, 육류, 과일 등 먹는 것 전반을 가리키는 새말로 '먹거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지금의 '먹거리'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말'에 대한 판단이 놀랍고 정확하다.

2012년 여러분의 언어생활은 어떠한가? 날이 갈수록 과격한 단어, 거친 발음, 극단적 표현이 넘쳐난다. '얼짱, 몸짱, 얼꽝, 몸꽝'은 애교 수준, 종강파티를 '쫑파티', 이외에도 '쪽팔린다, 싸가지 없다'는 말도 흔히 사용한다. 심지어 가격 파괴, 학벌 파괴, 주차 전쟁, 입시 전쟁에서처럼 '파괴, 전쟁'이라는 말도 익숙하게 쓰고 있다. 더 자극적이고 시선 끌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는 것은 무엇일까? 파괴와 전쟁이 남긴 것은 싸워야 한다는,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언어는 한 시대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규범에 어긋난 표현들과 거친 단어, 그리고 격한 발음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증거한다. 생각을 지배하는 말을 바로잡기 위해 '먹거리'를 제안했던 한 사람의 노력을 되새겨 우리의 언어생활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필요성에 동감해도 공부하려니 어렵더라는 변명은 사양한다. 작가에게 물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접으시라! 기억할 것은 '표준국어대사전' 7자뿐이다. 표준국어대사전만 있으면 띄어쓰기, 맞춤법은 언제 어디서나 만점이 가능하다. 심지어 작가에게 묻는 것보다 시간도 빠르고, 해답도 정확하다. 오늘 이후,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언어생활은 정확해지고 본인은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성교선/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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