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외가가 있는 영덕군 영해면 괴시(槐市)마을. 선생은 목은집을 통해 "고향 영덕의 경치가 동방에서 가장 으뜸이다. 건강할 때 땅을 갈고, 집을 짓고, 해돋이의 빛을 한번 마셔야겠네"라고 했다. 시 구절이 가슴에 와 닿게 하는 목은이 살던 곳, 괴시마을. 우아한 옛집의 솟을대문을 열고 조심스레 몸을 들였다.
◆괴시마을의 고택
목은의 외조모 영양 남씨가 살던 집성촌답게 남영식(73) 괴시마을 보존위원장과 남영국(74) 전 인천대 부총장, 남씨 성을 가진 두 어르신이 마을 안내를 맡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은 "매우 특이한 건축구조를 가진 고택이 있으니 가보자"며 손을 이끌었다.
천전댁(川前宅). 남유용 공이 건립한 건물로 안채에 사랑채와 문간채가 연결된 'ㅗ'자 형태를 갖고 있다. 한국 고택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모양새다. 보통은 'ㅁ'자나 'ㄷ'자 형태를 갖고 있는데, 이 고택은 이와 달리 날개가 솟은 것처럼 양옆이 길게 뻗어 있다. 그래서 이곳을 '날개집'이라고도 부른다.
대문을 지나 고택 누마루에 올라서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자신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안채가 워낙 집안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바깥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다.
남 위원장은 "그저 누마루에 앉아 하루종일 빈둥대야 이곳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신선놀음하기에 제격'이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남 위원장의 천전댁 자랑이 끝나자, 남 전 부총장이 "또 다른 형태의 고택을 보여주겠다"며 길을 잡았다.
그는 "아녀자의 모습을 드러나지 않게 눈막음을 해주는 '샛담'이 자리한 고택이 있는데, 옛 사람들의 생활풍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물소와고택'(勿小窩古宅)을 소개했다.
이 고택은 물소와 남택만 공이 종가에서 분가한 뒤 그의 증손인 남유진이 건립했다. 건물 입구에는 그의 말대로 남녀 생활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샛담'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샛담은 뒤로 자리한 우물에 앉아 일했을 아녀자의 모습을 커튼처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문득 고택을 덮고 있는 기와와 돌담길이 요즘 것 같다는 생각에 이유를 묻자, 남 위원장은 "원래 것을 약간 손본 것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세히 보니 오래된 기왓장 사이로 새 기왓장이, 옛돌과 새돌이 자연스럽게 엉켜있었다.
남 위원장은 "흙에서 만들어지고, 흙으로 돌아가고, 또 흙에서 만들어지고, 고택은 그렇게 자연을 채우고 비우고 하며 세월을 버텨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택의 아름다움이자 멋"이라고 했다.
괴시리 마을 고택은 정자와 서당을 모두 합쳐 30호. 주택은 20호가 있는데, 실제 괴시리 주민들이 사는 집은 10호뿐이다. 형태는 'ㅁ'자형이 대부분이고,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밀집도가 높다는 것이다. 넓지 않은 공간에 멋스러운 고택이 줄을 잇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표 고택으로는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槐市派宗宅), 대남댁(台南宅), 해촌고택(海村古宅), 주곡댁(注谷宅), 경주댁(慶州宅), 구계댁(邱溪宅), 영은고택(瀛隱古宅), 영감댁(令監宅), 사곡댁(沙谷宅), 입천정(卄川亭) 등이 있다.
괴시마을 고택은 다행히 주민들이 중심이 돼 잘 보전되고 있는 편이지만 남 위원장은 고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괴시마을 고택만큼 밀집도가 높고 잘 보존된 곳이 드물다. 하지만 앞으로 보존이 능사는 아니다. 고택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가둬 두기만 한다면 언젠가 정말 과거가 돼 버리고 만다.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한국인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지금부터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목은기념관
집성촌을 벗어나 산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목은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 자체는 소박하지만 오르는 길이 예쁘다. 기념관 옆에는 오래된 기와와 나무, 문풍지가 드려진 목은 외가가 외롭게 서 있다. 목은이 생전에 기거했던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목은 생가터는 목은이 세상 틈바구니에서 잠시 벗어나, 글을 쓰고 시름을 덜어내기에 차고 넘칠 만한 풍광을 갖추고 있다. 아래로는 굽이 보이는 괴시마을이 소담스럽고, 뒤로는 하늘을 찌를 듯 맹렬히 솟은 소나무 숲이 멋스럽다. 터 뒤로는 해와 달을 보는 장소마저 달리 고르는 선현들의 낭만이 서려 있는 망일봉(望日峰)과 망월봉(望月峰)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 뒤쪽 언덕에는 관어대가 자리하고 잇다. 외가에 놀러 온 목은이 붙인 이름이다. 목은은 이 언덕에 서서 고래가 병곡 앞바다에서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 해수욕장'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이곳은 괴시마을 입구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깊은 산속에 홀로 들어온 느낌을 준다. 길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등산객이 적막을 깰 뿐 어떠한 방해도 없다.
◆괴시마을
원래는 연못 이름을 따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렀다. 그러나 원나라에서 귀향한 목은이 호지촌과 원나라 한림원 학사 구양현이 살던 괴시(槐市)와 지세가 닮았다 해서 이곳을 괴시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괴시마을이라는 명칭과 함께 호지골, 호지마을, 호지촌으로도 불리고 있다.
괴시마을은 1260년 함창 김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수안 김씨, 영해 신씨, 신안 주씨 등이 거주하다 1630년 영양 남씨가 정착하면서 '영양 남씨 집성촌'이 됐다. 집성촌이 된 이후 다른 성씨들은 이주하고 조선 중기부터는 영양 남씨만 남게 됐다. 마을은 주봉인 망월봉 아래 '八'자 형태로 틀을 잡고 있으며 고택 구조 대부분이 서남형이다. 마을 앞에는 동해안의 3대 평야 가운데 하나인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어 세도가들의 터전임을 짐작게 한다. 고택은 200년 전에 지어진 것들로 'ㅁ'자형이 대부분이다. 문으로 들어서면 사랑채 뒤에 안채를 숨겨 안팎을 완전히 분리한 사대부가의 전통건축 양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국가 및 도문화재자료 14점이 간직돼 있다.
영덕'박승혁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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