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소설 쓰는 사회

"소설 쓰고 있네."

한 사내가 비아냥거리며 닦달하자, 단상에 선 사내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그러나 대놓고 말대꾸를 할 수 없으니 울분을 속으로 삭이면서 닦달질한 사내를 바라본다.

누가 거짓이고 누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시중에서 흔히 상대가 거짓인 듯한 진술을 하면 소설을 쓰고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비롯한 문예창작에 몸 바쳐 봉사하는, 자신의 생명을 투자하며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창작물인 소설을, 거짓을 고묘하게 각색한 결과물의 결정체로 묘사하며 매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한국 정치의 중심지인 여의도 일번지, 자칭 내로라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선량(選良)들의 집산지에서, 더 나아가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 공직자나 증인을 매도하는 단골메뉴로. 왜, "그건 거짓말입니다" 라고 하지 않고 "소설 쓰고 있네" 라고 할까.

그림, 연극, 영화, 드라마, 무용, 음악 등등 문화예술분야의 많은 다른 장르나 시, 수필, 평론, 희곡과 같은 다른 문예창작물은 외면한 채 왜 굳이 소설만 들먹이며 거짓말과 동일시하는 걸까. 소설(fiction, story, novel)과 거짓말(lie)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인가, 아니면 표현력이 부족한 선량들의 최선의 표현방법인가.

이 시대의 정치인,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한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지 않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입성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모두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분들이 적지 않았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분들이 증인이나 고위공직자에게 국가정책을 질의하며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이끌려서 상대의 말을 소설(거짓말)로 매도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국민을 호도하며 지역구 유권자를 거짓말로 현혹시켜서 표를 받아 입성한 듯한 모리배 수준 정치가들의 험악한 입에서 멋대로 마구잡이식으로 내뱉는 단골메뉴가 바로"소설(거짓말) 쓰고 있네"인 것이다. 이들의 행위가 국민의 본이 되니, 뒷골목의 목로주점에서도 누가 거짓말인 듯한 말을 하면 "소설 쓰고 있네~."라고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 장르를 두둔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찰스 디킨스나 헤밍웨이, 박지원이나 김만중이 거짓말쟁이가 아니었고, 이광수나 김동인, 최근에 작고한 박경리와 박완서가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호소하고 싶어서이다. 자신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생활은 차치하고 매스컴에 등장해서는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었을 때, 소설을 쓴다고 마음대로 남을 매도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매스컴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재용/소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