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정은미(가명'26'여) 씨는 엄마를 위해 자신의 꿈을 잠시 미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1년 만에 그만뒀고, 현재 매니저를 맡고 있는 커피전문점에도 조만간 사표를 낼 예정이다. 엄마 엄순자(가명'62) 씨는 요추골 추간판 장애(허리 디스크)로 지난 4년간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병원에서 누워 지낸다.
26세, 가장이 된 은미 씨의 어깨가 무겁다.
◆억척 엄마, 병에 걸리다
22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침대에 누운 엄 씨 곁을 은미 씨가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엄 씨는 2009년 9월 허리 디스크로 불리는 '추간판 장애' 진단을 받고 허리에 철심 3개를 박는 수술을 했다. 이후 철심 하나가 허리 안에서 부서지면서 염증이 생겼고 올해 2월 2차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뒤 엄 씨는 혼자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4시간 그의 곁을 지켜주는 간병인이 있어야 한다.
그는 15년 가까이 혼자 딸을 키워온 억척 엄마였다. 은미 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엄 씨는 남편과 갈라섰다. 매월 50만원씩 양육비를 받는 조건으로 합의 이혼했다. 그는 당시 남편과 함께 삼계탕집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이혼을 하면서 운영이 힘들어졌다. 엄 씨는 "갑자기 혼자서 식당 운영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손님은 조금씩 줄고, 적자가 나면서 결국 3년 만에 장사를 접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한때 식당 '사장님'이었던 그는 '종업원'이 돼 돈을 벌어야 했다. 엄 씨는 생계를 위해 자존심을 버렸다. 밤 근무가 많은 감자탕집에서부터 김밥집까지 곳곳을 돌며 주방일을 해 푼돈을 벌었다. 몸을 생각하지 않고 일하다 보니 조금씩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허리가 쑤시고,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왔지만 "죽는 병은 아니다"며 치료를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2009년 추석에 결국 일이 터졌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고 양발로 서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심했어요. 화장실에 갈 때도 기어서 가고. 미련하게 참으면서 약만 먹었는데 그게 병이 됐습니다."
◆외동딸, "엄마가 먼저"
수술을 한 뒤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여태껏 딸의 버팀목이 돼줬지만 이제는 딸에게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식사도, 대소변도, 산책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힘든 가정 형편 때문에 은미 씨는 일찍 철이 들었다. 10대 때는 큰 말썽 한 번 피우지 않았고, 2005년 경북 경산의 4년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뒤 스스로 학비와 용돈을 벌어 졸업했다.
엄 씨는 아프기 전에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아도 딸 손에 몇만원씩 용돈을 쥐여주는 평범한 엄마 노릇을 했다. 하지만 수술을 한 뒤 그는 "딸 발목을 내가 붙잡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고 고개를 숙였다.
24시간 간병인이 필요한 엄마 때문에 은미 씨는 1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복지관에 사표를 냈다. 한 달에 100만원 넘게 월급을 줘야 하는 간병인을 쓸 형편이 안 돼서다. 다시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시작했고 매니저로 자리를 잡은 지금 엄마의 건강이 악화되자 두 번째 사표를 쓰기로 했다.
은미 씨는 모든 삶의 기준이 엄마에 맞춰져 있다. 일은 물론 연애를 할 때도 엄마가 최우선이다. 결혼할 남자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엄마 모시고 살 수 있는 남자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나한텐 항상 엄마가 먼저다"고 대답했다.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눈덩이처럼 불어난 병원비만 생각하면 엄 씨 가족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올해 1월 말부터 병원에 입원해 진료비와 수술비, 입원비 등 총 1천700만원이 넘는 돈이 나왔는데 이를 해결할 길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전 남편이 가끔씩 보내주던 양육비 50만원도 뚝 끊겼다. 다행히 구청에서 긴급의료비 600만원을 지원해 급한 불은 끈 상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병원비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 의료비 혜택과 생계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엄 씨는 근로 능력이 없지만 부양 의무자인 은미 씨는 젊고 근로 능력이 있어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은미 씨는 "내가 일을 해서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는다 해도 24시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엄마 간병비로 다 써버리게 된다.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내가 엄마를 돌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직장을 관두기로 한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2주 전부터 고용한 24시간 간병인 인건비는 하루에 7만5천원, 그의 월급으로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그래도 은미 씨는 꿈을 꾼다. 엄마가 재활 치료를 받으며 혼자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면 새로운 직장을 찾아볼 생각이다. "우리 집 가장은 이제 나잖아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커피전문점에 정식으로 취업하고 싶어요. 엄마한테 맛있는 커피도 만들어 드리고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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