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대화-신달자

저건 무슨 대화인가

현관에 신발 두 개가 거꾸로 누운 채 겹쳐 있다

딸 신발이 눕고 그 위로 비스듬히 내 신발이 엎드려 있다

숲속 햇살 아래인 줄 알고 있는가

오솔길 달빛 속인 줄 알고 있는가

지붕 하나지만 서로 다른 창을 보며

지나가는 계절을 붙잡기도 하여

옆방에서 무슨 소곤거리는 소리 들리기도 하지만

딸 식탁에 술잔이 놓여 있고

엄마 책상에 술병이 놓여 있을 때

서로 곁눈질이나 하며 말이 없는 가족

신발이 내성적인 모녀를 대신해

엄마가 딸을 안고

딸이 엄마를 업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아니다

서로 한순간

두 마음이 신발쯤에서 부딪쳐 부딪쳐 부딪쳐

터지는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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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쉬운 언어로 일상의 의미를 포착하는 신달자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번 시에서 시인은 현관에 뒤집어져 있는 신발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네요.

살다 보면 가족끼리라도 '지붕 하나지만 서로 다른 창을 보며' 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날이면 현관에 우연히 겹쳐 있는 신발이 화해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하고, 울음을 참고 있는 마음으로 읽히기도 하지요.

어느 하나만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화해와 울음이 함께 엮인 것이 가족의 대화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족 간의 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힘든 고급회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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