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전략이고, 과학이다? 반려자를 선택하는 일인 만큼 나의 주변 여건과 상황을 잘 고려해 도움이 될 아내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 결혼정보업체이다. 결혼정보업체들은 남녀 회원들의 학력'직업'재산'가족상황'성장배경 등을 꼼꼼하게 따져 최상의 조건을 맞춰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략과 과학, 완벽한 조건은 삶이라는 현실 앞에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다. 부부라는 인연과 삶이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감성, 자신과 다른 배우자의 습관'습성,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상처, 양가 부모'친척들의 불편한 시선 등 부부에겐 잠재된 위험 요소들이 많다.
해결은 당사자인 부부의 몫이다. 부부가 원만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이혼으로 가기도 한다. 요즘 신세대 부부들의 결혼생활은 어떨까? 그들은 부부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예전의 전형적인 부부와 달리 별별 유형들이 등장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부부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에서 한발짝 비켜난 신세대 부부들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너는 너, 나는 나 '노터치 형'
부부 사이가 영어 그대로 노터치(no touch)다. 육체적'경제적'정서적으로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섹스리스'로 지내는가 하면 서로 딴주머니를 차고 있어 경제적 문제는 각자 풀어야 한다. 심지어는 상대방이 우울하거나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어도 무슨 일이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노터치'라는 묵계(默契'암묵적 계약)가 부부 관계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먼저 고민을 털어놓거나 병원에 가지 않는 이상 가만히 지켜보고 놔둔다.
이상진(가명'40'회사원)'김원화(가명'35'회사원) 씨 부부는 전형적인 노터치 형이다. 각자 나름 좋은 회사에서 전문적인 영역을 확보하며 인정받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임금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부부는 '딴살림'을 살고 있다. 부부의 재산이 철저하게 구분돼 있다. 합산은 아예 없다. 딸 하나를 두고 있어 양육'교육비 및 각종 생활비는 철저하게 분담한다. 정해진 날이 되면 각자 은행계좌에 정확하게 공동경비를 입금한다.
두 사람 모두 해외 출장이 찾은 편이지만 역시나 어딜 가는지 관심이 없다. 각자 알아서 외국을 나가고 돌아올 땐, 주로 딸의 선물만 챙긴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지만, 서로 좋을 때는 온전한 부부관계로 변신한다. 부부 모임 또는 서로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강력한 전략적 제휴가 맺어진다. 데이트 비용도 서로 내려고 한다.
◆모든 건 '반-반 형'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유형이다. 결혼 이후 모든 집안 일이 반반으로 나눠진다. 예를 들면 이번 주 설겆이 당번은 남편, 다음 주는 아내 차례, 추석이나 설 선물 비용도 처가 10만원, 시댁 10만원, 남편이 한번 어딜 가자고 제안해 다녀왔다면 다음 번엔 아내의 제안에 따라야 한다. 가정사 모든 일이 반반으로 나눠질 수 없지만 그래도 절대적 균형량을 반반으로 맞추려는 유형이다.
결혼 10년차 김상주(가명'39'회사원)'박지영(가명'37'주부) 씨 부부. 이들은 결혼 후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다툼이 잦자 5년 전 중대 결단을 내렸다. 모든 일을 반반씩 분담하기로 한 것. 이 방법은 나름대로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박 씨는 "결혼 초 집안 일에 아예 무관심한 남편 때문에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참아온 분노 때문에 감정 조절이 힘들 정도였다. 모든 일을 분담키로 한 이후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면 남편 김 씨는 다소 불만이다. "결혼 5년차 이후 아내 잔소리는 줄었지만, '남자가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돈이 좌우. '경제력 주도형'
부부의 주도권과 선택권이 돈에 의해 결정된다. 돈을 많이 벌어오는 사람에게 가정의 주도권을 맡기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런 유형의 부부는 주도권이 뒤바뀌기도 한다. 아내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남편에게 주도권이 있지만, 아내가 좋은 직장을 얻어 남편보다 소득이 많다면 주도권을 넘겨받게 된다. '당신네 집 사람들은 정말….''당신 어머니는 어쩜….' 등 서로의 집안에 대한 공격도 주로 돈을 많이 벌어오는 배우자의 권리가 된다.
결혼 14년차 김은성(45'자영업) 씨는 '경제력 주도형' 부부관계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영업을 하다 문제가 생겨 처가에 돈을 빌리면서 고개숙인 남자가 됐다. 그 때문에 아내가 아르바이트형 생계를 이어나갔고, 모든 집안의 궂은 일은 자신이 도맡아야 했다. 그러다 5년 전 요식업에 재도전해 성공했다. 남편이 사업을 확대하면서 아내는 다시 전업주부가 됐다. 이 때부터 남편은 집안의 모든 주도권을 탈환했다. 그는 "지금 하는 사업이 잘못되면 또 예전의 초라한 신세가 될까 걱정이 돼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잘못하면 안 돼, '벌점형'
스포츠에서도 반칙을 하거나 상대에게 해를 끼치면 페널티(penalty'벌칙)를 받는다. 악의적인 반칙이나 결정적 순간의 비신사적인 행위는 아예 퇴장이다. 부부관계 역시 마찬가지. 큰 잘못을 저지르면 부부관계 자체가 파탄이 난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정도의 위기에 놓이는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벌점제는 부부관계에 윤활유가 될 수도 있다. 신세대 부부들은 이 벌점제를 잘 운영해 합리적인 상벌을 하기도 한다.
신혼 부부인 이기욱(33'회사원)'윤혜원(30'회사원) 씨는 맞벌이를 하면서 알콩달콩 신혼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부부관계의 기본 룰(벌점제)을 철저히 지킨다. 30점 이하의 가벼운 잘못을 범했을 때는 주로 집안 청소 등의 일을 도맡아 해야 하고, 30∼60점 정도의 잘못을 했을 때는 배우자가 시키는 몇 가지를 수행해야 한다. 100점 이상의 중대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배우자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하고, 집안에서 아예 무엇을 하자고 제안조차 못하게 된다. 배우자가 용서해 줄 때까지 권리박탈이라고 보면 된다. 스포츠로 따지면 '몇 게임 출장정지'에 해당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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