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자동차의 가격 상승세가 무섭다. 새로운 모델이 발표될 때마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값이 뛴다. 지금까지 국산 자동차의 가격 상승세는 꺾인 적이 없다. 한마디로 무소불위다.
반면 콧대 높기로 유명했던 외국산 자동차의 경우 가격이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산 자동차 가격이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는 국내 자동차 회사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산 자동차와 외국산 자동차의 가격 차이가 좁혀지면서 외국산 자동차로 갈아타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고공행진하고 있는 국산 자동차 가격의 실태와 파급 효과 등을 분석했다.
◆국산은 올라가고, 외국산은 내려가고
이달 2일 판매가 시작된 현대자동차의 신형 싼타페 가격은 2천802만∼3천776만원(자동변속기 기준)이다. 이는 주력 모델(2.0 2WD 프리미엄)의 경우 기존 모델에 비해 24만원, 일반 모델은 100만원 정도 인상된 것이다. 기아자동차도 올해 초 2013년형 K5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50여만원 인상했다. 또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초 신형 그랜저HG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최고 220만원 인상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신형 i30를 내놓으면서 가격을 최고 454만원을 올렸다. 특히 신형 i30는 동일한 엔진과 변속기를 얹은 신형 아반떼보다 250만원 이상 비싸고 상위 차종인 쏘나타 기본 모델과의 가격 차이가 350만원 정도밖에 나지 않아 차 값이 너무 비싸다는 비난을 받았다.
가격 인상은 현대'기아자동차만의 일이 아니다. 올해 2월 르노삼성은 SM7에 일부 사양을 추가하면서 가격을 10만~62만원 올렸다. 쌍용자동차도 코란도C 일부 사양을 변경하면서 가격을 40만~50만원 인상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관행처럼 가격을 인상하고 있는 데 반해 최근 외국 자동차 회사들은 가격을 내리는 추세여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최근 한국도요타는 가격을 기존 모델 대비 최고 950만원 낮춘 고급형 SUV 올뉴 RX350을 출시했다. 또 최근 출시된 벤츠 B클래스를 비롯해 BMW 3시리즈, 도요타 캠리, 볼보 XC60 등도 가격이 기존 모델에 비해 60만~700만원 내렸다.
이에 대해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각종 편의 사양 추가, 모델 체인지 등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신차를 출시하면서 오히려 가격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설득력을 잃고 있다.
◆국산 자동차 그동안 얼마나 올랐나
국산 자동차 가격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디자인과 사양 등이 달라졌고 일부 모델의 경우 단종까지 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가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산 자동차 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신차가 출시되면 가격이 최대 40% 정도 오르고 모델 부분 변경이 발생하면 가격이 20% 정도 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또 해마다 연식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가격이 5~10% 정도 상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개월 만에 연식 변경이 이뤄져 1년에 두 번 이상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2012년 신형 YF쏘나타(가솔린'자동변속기 기준)의 가격은 2천210만~2천820만원으로 2000년 EF쏘나타(1천482만~1천951만원)에 비해 728만~869만원이 비싸다. 쏘나타 가격이 10년 만에 50% 정도 뛴 셈이다. 1995년 850만원(배기량 1,800㏄)이었던 현대자동차의 주력 모델인 아반떼는 올해 1천340만~1천890만원(1,600㏄)에 판매되고 있다.
2009년 한 자동차 전문 잡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동안 국산 자동차는 모든 모델의 가격이 상승했지만 외국산 자동차는 가격 상승이 크지 않았고 상당수의 모델은 오히려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산 자동차의 가격 상승 폭은 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03년 3.5%, 2004년 3.6%, 2005년 2.8%, 2006년 2.2%, 2007년 2.5%로 5년 동안 14.6%였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웬만한 모델의 국산 자동차 가격은 20% 넘게 뛴 것으로 조사됐다.
◆독과점 구조가 문제
국산 자동차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중요한 요인으로는 독과점 구조가 꼽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2008년 76.9%, 2009년 80.1%, 2010년 78.1%, 2011년 79.8%로 현대'기아자동차가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사실상 한집안인 점을 감안해 보면 독점 구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30%대에 불과하고 닛산, 혼다, 스즈키 등이 각각 10~15%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기형적인 독과점 구조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내수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차 값을 올리면 다른 메이커들도 따라오는 양상을 띠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현대자동차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현대자동차의 독과점 지위가 중'소형 자동차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불러온 것으로 해석했다. 2010년 금속노조도 '자동차 판매 및 부품공급 폭리' 보고서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대표 차종인 엑센트,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싼타페 등 5개 모델의 공장도 가격과 소비자 가격이 10년 동안 109% 상승한 것은 현대자동차가 독과점적 시장지배력을 악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현대'기아자동차가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이 따라 올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기술이 좋아지고 대량 생산이 이뤄지는 만큼 국산 자동차도 가격 동결 요소가 많다. 신차가 나올 때마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물가 상승 요인 감시해야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1천800만 대를 돌파했다. 이는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마다 오르는 자동차 가격은 이제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 가격이 올라가면 취득세와 등록세 등 자동차를 구입할 때 드는 비용은 물론 구입 이후 자동차를 유지하는 비용까지 높아지게 돼 소비자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자동차 가격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라면의 경우 50~100원만 올려도 담합을 조사해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라면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자동차 가격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것.
이경호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 언론은 통해 "자동차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국내에선 비싸게 팔고 해외에선 싸게 파는 가격차별까지 정부가 허용해왔다. 자동차 산업이 성숙한 지금 정부는 자동차 가격이 시장경제 논리에 맞게 매겨지는지 점검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브랜드는 다르지만 사실상 한몸이기 때문에 가격 결정도 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여지가 있다. 정부가 담합 여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강동수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시장지배적 사업자 때문에 발생하는 폐해는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던 순간부터 예견됐던 일이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정부가 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소비자 보호를 위해 독점이나 담합, 불공정거래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는 봉이 아니다
직장인 최지운(38) 씨는 최근 3천만원대 자동차인 도요타 캠리를 구입했다. 그는 당초 국산 SUV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견적을 내본 뒤 마음을 바꿨다. 최 씨는 "그동안 국산 자동차의 가장 큰 매력은 가격이었다. 외제차는 사고 싶어도 가격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산 자동차 가격이 많이 오르는 바람에 국산 자동차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외제차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외국산 자동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2천만~3천만원대에 이르는 외국산 자동차들이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국산 자동차 가격의 상승과 외국산 자동차 가격의 하락이 맞물리면서 구매권에 들어온 외국산 자동차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산 자동차의 판매량은 감소한 반면 외국산 자동차의 판매는 늘고 있는 것. 최근 지식경제부가 발효한 '4월 자동차산업 동향'을 보면 국산자동차는 2,000㏄ 초과 승용차의 개별소비세가 인하(10→8%)되었음에도 전년 동월비 6.8% 감소한 11만8천377대가 판매됐다. 반면 외국산 자동차 판매는 전년 동월비 30%가 증가한 1만668대를 기록했다. 외국산 자동차 판매가 증가함에 따라 외제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도 8.3%를 기록하며 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국산 자동차의 거침없는 가격 상승은 소비자들의 반발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를 무시하는 국산 자동차 회사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 누리꾼이 국산 자동차 가격 인하를 위해 불매운동이 일어난다면 동참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9%가 동참하겠다고 대답해 국산 자동차 가격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과 한국중소기업학회장 등을 역임한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산 자동차 회사가 이제는 수익성 위주 경영에서 벗어나 고객 위주의 경영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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