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봉급에 증명서만 달랑…인턴은 봉 누구탓?

청춘 착취자들/로스 펄린 지음/안진환 옮김/사월의 책 펴냄

대구시는 수성구 범어네거리 범어문화예술거리에 세계 각국의 미니 문화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 각 대륙별로 대표적인 국가의 전통문화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거다. 그런데 미국이나 프랑스 등 부자 나라 대사관들은 대구시의 제안에 시큰둥하고, 에콰도르나 캄보디아 등 형편이 넉넉잖은 국가들은 전시물품을 댈 수 있지만 운영비나 관리비가 없다며 망설인다. 마음 급한 대구시는 전기세나 청소비, 관리비는 받지 않고, 전시관 운영요원은 '대학생 무급 인턴'을 구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대학생 인턴에게는 이곳에서 일했다는 증명서를 내주겠단다. 물론 최저임금이나 4대 보험 따위는 없다.

경북도는 무급 인턴을 뽑아서 해외로 보내고 있다. 4년째 해온 '대학생 해외인턴사업'이다. 경북 지역 내 대학생 70명을 선발해서 동남아지역 기업체에서 3개월간 일하는 '무급 인턴'이다. 이들이 받는 돈은 왕복항공료와 3개월간 생활비 일부다. 국제 감각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인재로 키우겠다는데, 말 설고 물 선 곳에서 뭘 배워올지는 의문이다. 물론 참가 대학생들은 이력서에 해외 기업체 근무 경력을 한 줄 덧붙일 수 있는 '특전'이 제공된다.

인턴십은 선택적 특권일까, 아니면 불가피한 노예 계약일까. 실제 직업일까, 아니면 직장생활을 위한 연습단계일까.

'청춘 착취자들'은 상당수 기업이나 정부기관, 대학, 비영리단체에서 청년 노동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인턴십 프로그램의 실상을 고발한다. 극심한 취업 경쟁 속에서 하나의 '스펙'으로 취업 시장에 떠오른 인턴십 프로그램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 구조적으로 자리 잡았으며 어떻게 청년들이 이용당하고 있는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저자가 가장 먼저 든 사례는 '꿈의 왕국' 디즈니랜드다. 동심이 살아숨쉬는 디즈니랜드는 세계 최대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예쁜 검표원과 모노레일 기관사, 햄버거를 굽는 스낵바 점원, 미키마우스 가면을 쓴 배우까지 직원 절반인 7천~8천 명이 인턴이다. 인턴들은 '마법을 만든다'는 강한 자부심을 보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유니폼도 없이 파랑과 흰색이 섞인 명찰이 유일한 식별표이고, 전부 디즈니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최저임금(시간당 7달러25센트)에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일하지만 휴가나 병가 따위는 달콤한 꿈이다. 항상 활짝 웃는 '디즈니 얼굴'에 '디즈니 말투'를 쓰지 않으면 당장 해고다. 그래도 인턴들은 견딘다. 이력서에 디즈니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다.

인턴이 취업 시장의 필수 코스로 떠오르면서 그늘도 짙어졌다. 인턴 기회를 사고파는 경매 시장이 형성되고 단기간에 공짜 혹은 헐값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줄 인력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인턴은 노동자 신분을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가장 심각한 착취 시스템은 '무급 인턴십'이다. '자발적 동의'라는 허울 아래 노동 착취는 '경험'이나 '미래에 대한 투자' '스펙 관리' 등으로 포장된다. 무급 인턴십의 확산은 노동 시장을 파행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인턴십을 통해 고용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젊은 인력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정규직 채용은 당연히 줄어든다. 실제 국내 인턴의 정규직 전환비율은 10%에 불과하고 절반 이상은 용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한다. 이 같은 착취 시스템은 취업 프로그램 명목으로 무급 인턴십을 방관하는 대학과 무급 인턴을 모집하는 정부, 사회봉사라는 미명하에 무급 인턴을 채용하는 비영리 단체들에 의해 더욱 단단해진다.

인턴제는 빈익빈 부익부도 심화시킨다. 보수 없이도 인턴을 할 수 있는 고소득 계층은 조건과 전망이 좋은 인턴을 쉽게 차지한다. 그러나 생계가 막막한 저소득층은 무급 인턴을 계속하기 어렵다. 결국 '돈 많은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직장에 취업하는 부의 대물림 구조'가 강화된다는 의미다. 저자는 이렇게 순환하고 있는 작금의 노동시장을 '인턴 자본주의'라 이름 짓는다. 저자가 내놓는 해법은 '인턴 최저임금제'다. 최저임금제로 무급 인턴으로 인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352쪽. 1만5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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