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달팽이, 세상을 더듬다

달팽이, 세상을 더듬다/주잉춘 그림'저우쭝웨이 글/장영권 옮김

달팽이 한 마리가 있었다. 달팽이는 느릿느릿 길을 걷는다. 농약냄새에 쓰러져 있는 쥐며느리를 구해주고, 둘은 친구가 되어 느리게 세상을 탐험한다. 자벌레, 애벌레도 이 행렬에 동참한다. 하지만 사마귀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연못으로 떨어진다. 친구들의 주검 옆에서 달팽이는 절망한다.

그때 지혜로운 깨달음을 가진 잠자리를 만난다. "그렇게 너무 탓하지 마. 인생이란 것도 한바탕 꿈일 뿐이니까. 세상에 정말로 깨어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니?" 잠자리의 위로에 달팽이는 다시 힘을 얻는다. "세상일은 원래 무상한 거야. 저 무상함과 맞서서 이길 순 없으니 이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자고."

달팽이는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오히려 친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문을 잠그면 자신 또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더듬는 달팽이의 걸음은 느리다. 하지만 그 걸음이 품고 있는 세상에 대한 사색은 크고 깊다. 자연을 관찰하고 따뜻하게 묘사하는 주잉춘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달팽이를 작업실에서 직접 기르며 1년을 관찰했다. 채색 세밀화를 그리는 데 1년, 편집과 디자인 작업에 1년이 걸렸다. 이 책 역시 한 마리의 달팽이가 수행하듯 시간이 쌓인 결과물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를 표방하는 이 책은 그림의 여백만큼이나 큰 울림을 선사한다. 달팽이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참된 '사랑'만큼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달팽이가 많은 친구를 만나고 죽음을 만나고, 또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느리고 긴 여행을 마치고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평안함, 그게 바로 행복이지. 나는 계속 느릿느릿 길을 걸었다. 마음 가는 대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140쪽, 1만6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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