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를 일하면 1천만원을 준다고요? 당연히 일하러 가야죠. 학교 수업이요? 친구에게 대리 출석을 부탁하면 됩니다. 아 참. 그냥 휴학을 하면 해결되죠. 1천만원이면 한 학기 등록금 해결은 물론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넣어만 두고 결제 버튼은 클릭하지 못한 옷과 신발도 살 수 있고, 방학 때 유럽 여행도 다녀올 수 있는 걸요?"
대구의 한 대학에 다니는 박가람(가명'24'여) 씨가 '남태평양 상어 먹이 주기'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더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내뱉은 반응이다. 이 아르바이트는 피지관광청과 협약을 맺은 인터넷 모 아르바이트 소개업체가 대학생들을 선발해 남태평양 피지 섬에서 3주 동안 상어 먹이 주기 일을 시키고 거액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최고급 리조트에서 각종 레저, 영어 공부 및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는 이벤트다.
◆보통 대학생 박가람 씨의 '알바 라이프'
대학생 박가람 씨는 평범한 가정의 외동딸이다. 그는 공무원인 아버지, 집안일을 하며 종종 부업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등록금은 다행히 집에서 내 준다. 받는 용돈은 월 25만원 정도. 하지만 용돈이 늘 부족하다. 휴대전화 사용료, 교통비, 교재비 등을 쓰면 10만원 정도밖에 남지 않기 때문.
특히 박 씨는 3학년 들어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씀씀이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5개 취업 스터디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며 쓰는 경비, 공모전을 준비하며 드는 재료비 등이 상당하다는 것. "자기계발 및 인맥 쌓기 비용이죠.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나중에 직장인이 돼 인맥으로 삼을 수 있는 언니, 오빠, 친구들을 만나 공부하며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야 해요, 요즘 취업은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니까요."
박 씨의 아르바이트 스케줄은 이렇다. 매주 월'화'수요일에는 오전 수업을 마친 뒤 점심때부터 대학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3시간을 일한다. 매주 금'토'일 저녁에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 5시간을 한다. 그렇게 해서 월 50만원 정도를 번다.
주말에도 비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각종 연회장에서 서빙을 하는 케이터링(catering) 아르바이트다. 하루 4만원 정도로, 벌이가 쏠쏠하다. 그 외에도 고수익 알바를 검색하는 것이 박 씨의 취미다. 방송국 방청객 알바도 해봤단다. 방청객 대표로 질문을 하면 기본 3만원에 1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방학 때마다 뽑는 관공서 아르바이트도 모집 공고가 뜨기만을 기다린다.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진데다 단순 문서 정리 등 업무 강도가 낮아 남는 시간에 토익 책을 꺼내 놓고 공부도 할 수 있어 대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는 대학생이 자기 생활을 윤택하게 운용하기 위한 윤활유입니다. 제한된 용돈에 부가 수입을 더해 자신을 개발하고, 소비생활도 누릴 수 있어요. 더구나 입사 면접 때 면접관이 아르바이트 이력도 본다면서요?"
◆비싼 대학가
'너도나도 아르바이트' 분위기의 이면에는 젊은 층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도 있다. 이는 대학가의 물가 상승과 연관이 있다. 대학가가 값싼 먹거리촌에서 비싼 외식문화의 메카로 변화하고 있는 것.
경북대 북문 대학가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원룸 주인 김모(54'여) 씨는 "10년 전만 해도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을 위한 밥집이 20여 곳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고 뒷골목에 몇 곳 남아 있다. 밥집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한 접시에 9천원 하는 스파게티전문점, 한 잔에 5천원 하는 커피전문점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경북대 북문 대학가를 찾아 커피전문점, 스파게티전문점 등을 둘러봤더니 모두 100여 곳이 넘었다. 특히 몇몇 대형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는 아예 4층 이상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고, 밤낮 대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다른 대학가도 마찬가지. 계명대 2학년 김모(23'여) 씨는 "점심때 밥값 5천원에 커피값 3천500원 정도를 쓴다. 언젠가부터 대학가 목 좋은 곳에 비싼 외식,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가 마구 들어서면서 저렴한 식당은 찾기 힘들고, 또 멀리 걸어가야 한다"고 불평했다.
지역 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컨설턴트는 "요즘 프랜차이즈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이 대학가 상권이다. 2008년 이후 외식 업계에서 2030세대의 구매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대학가에서 젊은 층의 구매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백태
어학연수, 여행 등 하고 싶은 것은 많다. 그러나 부모님께 받는 용돈으로는 당장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것도 감당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이를 단번에 해결하고, 추가로 일확천금도 노릴 수 있는 '고수익 아르바이트'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해 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거마대학생'이 대표적이다. 거마대학생은 다단계 판매업에 빠져들어 서울 송파구 거여'마천동 일대에서 집단합숙을 했던 대학생 및 휴학생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후 집중단속으로 80% 이상이 떠났지만 아직 남은 대학생들은 "조금만 더 하면 목돈을 벌 수 있다"며 버티는 상황이다.
명품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도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한 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10명 중 3명은 명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인 대학생 1천300여 명 중 58%는 "명품 가방, 신발, 지갑 등을 1개 이상 가지고 있다"고 답했고, "짝퉁 명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는 대답도 35%나 됐다.
명품이 수백만원 하는 가방, 신발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수만~수십만원 상당의 화장품이나 액세서리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충분히 구입할 만한' 명품이다. 대학생 정모(27'여) 씨는 한 달 아르바이트로 버는 50만원 중 수입 화장품 구입에 20만원을 쓴다. 그는 "20대부터 피부 관리를 하는 트렌드에 원료도 좋고, 인증도 받은 유명 수입 화장품에 투자하고 있다. 토익 공부처럼 취업 전 자기계발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부지만 사회적 논란을 낳는 아르바이트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꽃뱀 여대생'이 등장해 논란을 낳았다. 나이트클럽에서 즉석만남으로 만난 남성들을 특정 주점으로 데려가 바가지 술값을 물리고, 술값의 40%를 보수로 받는 아르바이트를 한 여대생들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이달 16일 이들과 업주를 모두 불구속 입건했다. 여대생들은 "어학연수 등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꽃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3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을 둔 황재교(55'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내가 젊었을 때는 돈이든 뭐든 지금보다 더 부족했어요. 그래도 아르바이트는 경험 삼아 방학 때나 하던 것이었죠. 아니면 고향집에 내려가서 농사일을 거들던가요. 돈이 없으면 안 쓰거나 아껴 썼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더군요. 몇 달 전 아들이 낮에 학교 다녀와서는 밤을 새우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어요. 피곤하면 학업에 지장을 줄 테니 대신 용돈을 더 쥐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됐다고 했어요. 그러자 딸이 저에게 넌지시 알려줬습니다. 겉으로는 '아르바이트는 젊어서 하는 고생'이라고 둘러대지만 실은 '부모님 몰래 돈을 모아 사고 싶은 것이 있어서'랍니다."
◆대학생에게 아르바이트란?
20대 젊은이들의 소비 특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들은 트렌드 세터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상품을 깐깐하게 고른다. 구입을 주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학생들은 돈을 벌지 않는다. 소비 욕구를 충족하려는 만큼 경제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는다. 그 유일한 해결책이 바로 아르바이트다.
대학생 홍준표(29) 씨는 "물론 등록금을 벌고, 생활비를 버는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일부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대부분 등록금 부담과 생활비 외에 자기 소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가는 해외여행도 단순히 즐기려는 것이 아닌 '경험'이라는 스펙 쌓기이고, 옷을 구입해 남들에게 세련되게 보이는 것도 자기 이미지 관리의 하나다. 취업 경쟁이 아르바이트를 부추기는 탓도 있다"고 말했다.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해 지난해 졸업한 직장인 권모(32) 씨는 "지금을 단군 이래 가장 풍족한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늘 부족하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들은 또래처럼 비싼 모 유명 패딩점퍼를 입어야 한다며 부모님 등골을 휘게 만들고 결국 부러뜨리고 만다. 그래서 '등골 브레이커'라 하지 않는가. 대학생이 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고생 때와는 달리 해결책이 생겼다. 바로 아르바이트"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구조가 돼 있다.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대학생 아르바이트족이나 프리터 족(특정한 직업 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 층)을 포함하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국 중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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