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전후로 한국에 파견돼 전쟁고아를 돌봤던 미국 선교사들과 이들이 세운 직업학교 출신 제자들이 50년 만에 상봉했다.
25일 오후 6시 대구수성관광호텔. 초로의 신사 30명이 벽안의 노인 40명을 뜨겁게 포옹했다. 초로의 신사들은 6'25전쟁 전후의 고아였고, 벽안의 노인들은 당시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었다. 50년 만에 선생님을 다시 만난 제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모두 고아로 자랐지만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목사, 사업가, 엔지니어로 성공해 옛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이다. 초로의 신사들은 어설픈 영어였지만 선교사들에게 자신을 또박또박 소개했다.
이번에 방문한 선교사들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한국에 파견돼 1971년까지 21년 동안 대구와 경산지역의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을 돌봤고 직업학교를 세워 제자들을 길렀다.
이뿐만 아니라 급식소를 차려 굶주린 주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했으며 의료봉사 활동도 했다. 직업학교 졸업생 중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학생도 있었다.
목사인 김청은(68) 씨는 전쟁 중에 부모님을 잃었다. 경산의 한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김 씨는 1954년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잘 먹지 못하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폐결핵에 걸렸다. 김 씨를 구해준 이는 당시 교장의 부인이었던 트와일러 브렁크(77) 씨였다.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돌본 그녀 덕분에 김 씨는 병이 나아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브렁크 씨는 "50년 전 김 씨가 폐병에 걸려 돌봤던 기억이 난다.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쁘다"고 감격해 했고, 김 씨 역시 브렁크 씨를 보자마자 '어머니'라며 껴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선물로 밥그릇을 준비한 그는 "지금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밥그릇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은 졸업생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 미안해하기도 했다.
폴 호스텔러(72) 씨는 "50년 만에 다시 만나니 얼굴이 많이 변해 있어 잘 기억을 하지 못하겠다"며 "직업학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종관(69) 씨는 "선생님들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꿈만 같다.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아서 너무 아쉽고 슬프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개 시간이 끝난 후 선교사들과 제자들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50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선교사들은 26일 오전 경산에 있는 직업학교의 옛 터를 둘러본 후 서울로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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