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내리막길

한글맞춤법 제6장 제51항을 보면 부사 끝음절에 붙는 '-이' '-히'에 대한 규정이 있다.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 나는 것은 '-이'로(깨끗이 나붓이 버젓이 등),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솔직히 가만히 간편히 등), '히'로만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극히 엄격히 정확히 등)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정만으로는 알기가 쉽지 않아 외우는 도리밖에 없다. 단순히 '-이'냐 '-히'냐의 잘못보다 전달하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도 남을 35년 동안 면면이 이어온 대구 산악인들의 체육대회가 열려 관심을 받고 있다." "신라에서 고려로 이조 오백 년을 우리 단일 민족은 면면히 이어 왔었습니다."

앞서의 문장에 나오는 '면면이' '면면히'도 '-이'와 '-히'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다른 뜻을 가진 구분해야 할 단어이다. '면면히'는 끊어지지 않고 죽 잇따라, '면면이'는 저마다 따로따로 또는 여러 면에 있어서의 뜻이다. "기념식 규모는 작고 조촐하지만 선열들이 보여준 애국 충정을 기리는 애국 애족 정신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는 모인 사람 모두에게 면면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였다."로 쓰인다.

'간간이' '간간히', '번번이' '번번히'도 '면면이'와 '면면히'와 같이 구별해야 한다. '간간이'는 시간적인 사이를 두고서 가끔씩, 공간적인 거리를 두고 듬성듬성을 뜻하며, '간간히'는 입맛 당기게 약간 짠 듯이란 의미다. "간간이 감흥이 이는 대로 글을 써 나갔다." "음식은 간간히 조리해야 맛이 난다."로 쓰인다. '번번이'는 매 때마다, '번번히'는 구김살이나 울퉁불퉁한 데가 없이 펀펀하고 번듯하게라는 뜻이다. "약속을 번번이 어기다." "농지 정리를 하여 논 전체를 번번히 골랐다."로 활용한다.

미국의 헨리 나웬은 예수회 신부이자 유명한 대학교 교수였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서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여 주는 등 여러 가지 잡일을 했다. 힘든 일과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는 언제나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면서 살았다. "나는 높이 올라가는 일에만 신경을 써 왔습니다. 이렇게 나는 오직 성공을 위하여 더 높이, 정상을 향하여 오르막길만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지적 장애아를 만나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내리막길을 갈 때 더 성숙해진다는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저서(예수의 이름으로)에서 삶의 변화를 말했다.

간간이 생각해봤을 법도 하겠지만 이번 한 주간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교정부장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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