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집으로 가는 길에 차 한 대가 골목을 막고 서 있었습니다. 경적을 울렸지만 앞차는 시동을 켜 놓은 채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 앞으로 가려는 순간 헤드라이트 불빛에 무언가 보였습니다.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길 한복판에서 움직일 생각도 안 하고 차를 향해 야옹거렸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시위하려는 듯. 가만히 보니 고양이 앞에 또 한 마리 고양이, 아마도 새끼인 듯, 새끼는 차에 치인 것 같았습니다. 엄마고양이는 누워있는 새끼고양이를 차들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막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앞차가 왜 움직이질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미까지 칠 수는 없는 일이었겠지요. 그렇다고 새끼고양이를 어떻게 해주기에는 용기가 없었나 봅니다.
새끼 고양이가 죽었다면 저도 차마 만질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체를 만지는 것은 아무리 동물을 좋아한다 해도 섬뜩한 일이거든요. 잠시 머뭇거리다, 그래도 동물을 키워본 제가 차에서 내렸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어미고양이는 새끼를 놔둔 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용기를 내 새끼고양이를 들어 올렸습니다. 두 손이 떨렸습니다. 새끼의 몸이 차갑기는 했지만 뻣뻣하지는 않았습니다. 뼈가 앙상한 게 무척 가벼웠습니다. 다리에는 핏자국이 보였고 몸을 축 늘어뜨린 게 숨이 멎은 것 같았습니다.
고양이를 막 길가로 옮기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새끼가 몸을 움찔했습니다. 숨이 붙어있었나 봅니다. 자신을 방어하려는 마지막 몸짓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란 가슴으로 새끼고양이를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길옆의 풀밭 위로 옮겼습니다.
차로 돌아와 새끼고양이를 놓은 곳을 다시 보았습니다. 어느새 어미가 다가와 근처에 주차된 차 밑에서 구부정한 몸을 한 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도 되는 건지, 날은 캄캄하고, 집에는 가야겠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오다가 있던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병원에 데려다 주지."
"…."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새끼고양이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눈으로 더듬어 찾아간 풀밭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했습니다. 분명 그 자리에 놓아두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요? 잠시 기절했던 새끼 고양이가 깨어나 다리를 절며 엄마와 함께 보금자리로 돌아간 걸까요? 아니면 어미고양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새끼고양이를 다른 곳으로 옮긴 걸까요?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근처에서 고양이를 찾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비오는 날 아파트 건물 아래서 애처로이 울고 있는 아기고양이를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그러나 싶어 우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아기고양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굴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 같았지만 벌써부터 인간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이 각인된 듯하여 씁쓸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이웃에 고양이를 잡아서 잔인하게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기고양이는 그 사람 손에 엄마를 잃고 그렇게 애달피 울었나 봅니다.
꼬리를 내리고 근육을 씰룩이며 낮은 자세로 어슬렁거리다가 사람을 마주치면 얼른 숨어버리는 길고양이들, 때론 쓰레기통 뒤에 바짝 숨어 피곤함이 묻어나는 때꾼한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묘생의 삶을 살아내기가 무척 팍팍한 듯 보입니다. 사람들은 시끄럽다는 이유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고양이에게 돌을 던집니다. 심지어 벽돌을 던지거나 섬뜩한 방법으로 고양이를 죽이기도 합니다. 고양이를 포획하여 중성화시키는 것으로 개체 수를 줄이려고도 한답니다. 길고양이 수명 3년, 운이 좋아야 사랑도 하고 아기도 키울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막아서 새끼를 지키려 했던 어미고양이의 새끼에 대한 사랑이, 그리고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던 아기고양이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사람 못지않아 가슴이 찡했습니다.
'고양이들이 사라진 동네는 / 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입니다. / 이만저만 조용한 게 아니겠지요. / 그러면, 좋을까요?' (황인숙)
한 시인이 묻고 있습니다.
백옥경/구미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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