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이 답답해질 때면 '혹여 부모님께서 남겨 줄 재산(財産)은 없는가'라며 괜스레 엉뚱한 기대를 해보곤 한다. 필자 역시 살아오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헛된 망상임을 알면서도 절박한 심정에 매번 기대를 하곤 했었다.
이제 한 아이의 아비가 되고 죽을 날이 살 날보다 많이 남지 않은 지금, 혹여 내 자식 놈도 유산(遺産)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해서 두렵다.
가만히 눈을 감고 돌이켜본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고 떠나버리신 건가. 그렇다. 통장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섭섭하다고 투덜거리기에는 가장 중요한 유산을 선물해 주시고 떠나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아버지가 불러 앉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직장 생활에서 최고의 사원은 어떤 사람일까." 너무도 손쉬운 질문에 "실적이 최고인 사람 아닙니까"라고 오히려 반문해 보았다. 아버지는 물 한 컵 드시고서는 "물론 그 회사가 잘 되려면 직원 모두가 실적을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경영자의 심중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먼저다. 이것은 사회생활이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예를 들어 시아버지가 성격이 급한 분인데, 새로 시집 온 며느리가 최대한 정성을 다한다고, 심하게 갈증이 나서 물 한 컵 달라고 하는데, 받침대를 찾고 크리스털 컵을 준비한다고 시간을 다 보낸다면 어떻게 생각을 하시겠느냐. 당연히 그 며느리에 대해서 느림보라고 여길 것이다. 반대로 성격이 차분한 시아버지는 급히 물만 갖다 드린다면, 그 또한 며느리가 경망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결국 윗분을 모신다는 것은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에 맞추어야 하는 거다."
아버지의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금쪽같은 종잣돈 역할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던져주신 것이다. 오랜 시간 공연 현장에서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할 때도 이것은 참으로 많은 힘이 되었다.
설사 부모님들이 아무리 많은 재산을 남겨준다고 한들, 그것이 진정한 나의 재산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관리를 잘못하면 그것은 일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재기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은 다르다.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삶의 지혜이다. 이제 아들놈을 비롯해 많은 후배에게 아버지가 물려주신 지혜를 유산으로 선물하고 싶다.
"아버지, 부자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달성문화재단 문화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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