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소통의 양극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인 현익 변호사는 주말에 부친의 묘를 참배했다. 오늘은 두 건의 재판을 서면으로 준비했고 저녁엔 그가 몸담은 정당의 행사에 참석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그가 오늘은 두 끼를, 저녁에는 감자수제비를 먹었다.

대학동기인 호 선생은 오늘 KTX로 대전에 가서 세 시간 연강을 했고 그녀의 딸은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야간자율학습을 빼 먹었다.

빵집을 운영하는 성일 친구는 지난주에 지리산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33km를 주파했고 근영이 형과 화엄사 근처 뚝배기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바로 위층에 살면서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후배 한교는 요즘 진보정당의 행태와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심히 개탄스러워 하고 있다.

나는 일주일 동안 그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뭘 하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대체적으로나 속속들이 알고 있다. 심지어 지난겨울에 그들이 한 일까지 알 수도 있다. 바로 SNS를 통한 소통의 결과다.

가히 혁명적일 만큼의 속도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실제로 아프리카와 중동의 '재스민 혁명'을 성공시킨 요인 중 하나였을 정도로 SNS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더더욱 그러하다. 국가기관과 단체, 개인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철학 등 전 분야 전 영역을 망라해 이제 SNS로 소통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확대보급은 SNS 이용을 더욱더 가속화시켰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식을 올리고 반응을 살핀다. 잠시라도 소식을 확인하지 못하면 답답해한다. 'SNS 피로증후군' 혹은 '정보피로증후군'같은 신조어들도 생겨난다. 나 또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수없이 '페이스북'을 들락거리고 있다. 그사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인기 많은 여자 친구(?)가 글을 올렸다. 감기에 과중한 업무까지 겹쳐 종일 고생을 했다는 내용이다. 순식간에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몸이 상할까 염려된다는 것에서부터 다양한 처방을 내놓는 이도 있고 심지어 특효가 있는 약재를 보내겠다는 것까지 눈물겹도록 다정한 댓글들이 줄을 잇는다. 아마도 이 친구는 큰 위로를 받고 회복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를 포함한 SNS 애용자들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아내가 오늘 하루 무슨 일을,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고 있는가? 오뉴월 땡볕에서 홀로 밭일 했을 어머니에게 전화 소통이라도 한 번 했는가? 틈만 나면 마주보는 스마트폰 대신 바로 앞,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마주보며 다정다감한 대화라도 한 번 나눠볼 의향은 없는가?

이병동<CF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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