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수입으로 살아가는 한 마을이 있다. 관광객 한 사람이 와서 호텔에 방을 잡는다. 10만원짜리 수표로 숙박료를 지불한다. 관광객이 객실에 다다르기도 전에 호텔 주인은 수표를 들고 정육점으로 달려가 외상값 10만원을 갚는다. 정육점 주인도 즉시 그 수표를 자기에게 고기를 대주는 농장 주인에게 가져다준다. 농장 주인은 얼른 술집으로 가서 여주인에게 외상값을 지불한다. 술집 여주인은 호텔에 가서 호텔 주인에게 진 빚을 갚는다. 돈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첫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그녀가 10만원짜리 수표를 카운터에 내려놓는 순간 관광객이 객실에서 내려온다. 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수표를 집어들고 사라진다. 돈이 돌기는 했지만 번 사람도 없고 쓴 사람도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열린책들) 中 일부 각색-
돈은 돌고 있지만 마을에서 돈을 번 사람은 없다. 외지에서 온 사람의 돈이 돌고 돌아 결국 자기 손으로 되돌아갔다. 지역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금융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거대금융에 반기를 들었던 월가의 시위는 거대금융의 약점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사회공헌이었다. 사회공헌에 인색하면 금융 소비자는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금융의 모세혈관인 풀뿌리 금융 활성화는 지역의 생사와 궤를 같이하기에 지역금융사들은 지역민과의 호흡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지역금융의 사회공헌-구미 인동새마을금고
"지역민들과 회원의 거래로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다시 지역과 회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임무다."
지역농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 지역금융은 지역에서 시작해 성장하기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에 소홀할 수 없다. 지역민들이 키우지 않으면 커갈 수 없다는 태생적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미 인동새마을금고다. 이곳은 1980년 12월 자산 44만1천원으로 시작한 풀뿌리 금융조직이다. 당시 회원은 60명에 불과했다. 과연 누가 30년 뒤 자산 2천230억원, 거래 회원 4만 명이 넘는 조직으로 커가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이곳 김수조 이사장은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게 우리 조직의 존재 이유"라며 "지역민들의 지역 사랑 마인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단언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곳도 지역 환원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장학사업의 지속적인 운영으로 지역 동량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는데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취미 교실 및 산악회 운영으로 지역민의 결속을 이끌고 있다. 4년 전부터는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좀도리 운동'을 펼쳐 1만㎏의 쌀을 모으기도 했다. 지역민들에게 필요하다 싶은 것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도입한다. 홀몸노인이 적잖다는 여건을 반영해 2009년부터는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봉사와 영정사진 촬영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역금융의 사회공헌-대구 청운신협
풀뿌리 금융의 핵심은 지역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역민들이 소비한 재화를 다시 지역에 환원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사례는 지역신협에도 있다. 1972년 출자금 1만2천원, 조합원 40명으로 시작된 청소부들의 상조회는 2012년 청운신협이라는 이름의 어엿한 지역금융 효자가 됐다.
지역 빈민과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청운신협이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공헌 사업에 매진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이곳 심훈 이사장은 "신협이 본업인 금융으로 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은 상품 판매, 이익 관리, 각종 서비스 등으로도 가능하지만 조합원을 위한 윤리적'도덕적 역할은 따로 또 있다"고 했다.
이곳 역시 지역민과의 소통이 최우선 고려 사항이다. 1983년부터 조합원 자녀들의 유아교육 체계 확립을 위해 운영해온 부설 어린이집은 집단 육아를 요구하는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 시작한 것이었다. 10년 전부터는 수성시장 등 조합 인근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 이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은 물론 시장 상인들의 친목 도모와 활성화를 위한 각종 문화행사를 후원하는 것도 청운신협의 몫이 됐다.
◆금융이 곧 주도권
지난해 11월 월가를 점령했던 시위대는 그달 5일을 금융권 탐욕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로 정해 실행에 옮겼다. 시위대는 그해 9월 29일부터 이미 대형은행에 틀어놨던 자신들의 계좌를 지역은행이나 주정부 및 지역공동체가 운영하는 신용협동조합 등으로 옮겼다. 파장은 대단했다. 금융 소비자의 힘은 대형은행을 무력화했다. 한 달여 만에 신협에 65만 명의 신규 계좌가 늘어 신협에는 45억달러(5조130억원)가 새로 계좌에 편입됐다. 대형은행들은 금융 소비자의 목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다.
지역경제도 마찬가지다. 지역경제 살리기는 '지역순환'에서 나온다. 시장에 들러 시장 상품을 구매하고 지역 기업 제품을 찾으면 지역경제가 살 수 있다. 지역에서 판로를 개척한 생산자는 지역의 종업원에서 급여를 주고 잉여금으로 재투자하거나 금고에 예치해 놓는다. 종업원도 급여로 지역에서 소비하며 미래를 위해 잔금을 쌓아놓는다.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의 귀착점은 금융이다. 지역금고에 자금을 옮겨놓을 경우 지역에서 재순환되지만 서울 등 중앙집중 방식인 시중은행에 자금이 쏠릴 경우 종속 구조는 반복된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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