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내재적으로 접근해 무엇을 알아냈는가

이 땅의 종북주의자는 지적으로 매우 게으르다. 그들이 '내재적 접근법'이란 사이비 과학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내재적 접근법'이란 표현은 거창하지만 간단히 말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눈으로 본 북한이 진짜 북한'이란 소리다. 한마디로 ×소리다. 이 요설(妖說)의 창시자는 1970년대 서독학계를 잠시 주름잡았던 베를린자유대학 교수 페터 크리스티안 루츠이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동독을 동독의 시각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주사파 출신 논객 최성재에 따르면 루츠는 이를 위해 4가지 기본 원칙을 세웠다. 첫째 진지하고도 신뢰할 만한 정보, 둘째 가혹할 정도로 객관적인 분석, 셋째 비교 연구의 기초 확립, 넷째 정치적 결정의 탈(脫)이데올로기 및 합리화다.

이런 접근법이 당시 서독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동서독 분단이란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자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분단을 현실로 인정한다면 분단 현실의 한 축인 동독 역시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동독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동서독 주민 모두에게 버림받았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으로 민간인 교류가 확대되면서 동독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런 분위기 반전을 서독 일간지 차이트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체제내적인 서술을 통해 높은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체제내적인 기술은 무비판의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과 가치관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

그 후 루츠의 내재적 접근법은 통일 후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최종적으로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그가 슈타지의 포섭 대상, 즉 간첩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내재적 동독 접근법은 동독 체제를 합리화해주는 도구였던 것이다. 남한의 종북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은 이를 베낀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동독이란 단어를 빼고 북한이란 말을 집어넣은 것뿐이다. 가장 파렴치한 학문의 적(敵), 표절이다. 유통기한이 넘어도 한참 넘은 이런 표절 쓰레기를 신봉한다면 구제 불능의 지적 게으름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재적 접근법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허무주의요 사기다. 내부의 시각으로 내부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용인된다. 비판이 설 자리가 없다. 핵 개발도, 인권 탄압도, 사상 유례없는 3대 권력 세습도,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 명을 굶겨 죽인 것도 모두 나름대로 불가피한 것이 된다. 그런 논리라면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 체제, 온 국토를 '수용소 군도'로 뒤덮은 스탈린 체제, 대약진운동으로 3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마오쩌둥 체제, 폴 포트의 '킬링 필드'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 생명 존중이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바탕으로 '외재적'으로 접근하면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그들 자체의 논리로는 '인종의 순수성' '계급의 적 처단' '사회주의 혁명의 완수'를 위해 '불가피'했다. 이에 대한 종북주의자들의 대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종북주의자들은 북한의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빠져나간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소리다. 북한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탈북 주민의 증언은 차고 넘친다. 이들의 증언에 대해 30일자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통합진보당 이상규 씨는 "남에서 북으로 가는 사람이든, 북에서 남으로 가는 사람이든 자기가 있던 곳에 대해 좋게 얘기할 순 없다"며 오물을 끼얹었다. 북핵을 반대한다면서도 "북한이 미국과 군사적 대결 상태에 있는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가련한 몸부림이요 전형적인 초점 흐리기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민주 시민이라면 이런 세력과 같이 갈 수는 없다. 혹자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소수의 종북주의자에게 휘둘릴 만큼 허약하지 않다며 '마녀사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가하고 사치스런 소리다. 장강(長江)도 남상(濫觴)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더구나 이들이 지하에서 벗어나 국회로 들어간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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