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물의 세계] 폐경기 없는 개, 자궁 축농증

'까미'는 한 할머니와 12년을 함께 살아온 암컷 슈나우저다. 이 '까미'가 동물병원에 온 까닭은 생식기에서 농성 분비물이 나오고 다음다뇨(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와 식욕결핍 증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건강했던 '까미'가 활력이 감소하고 식욕이 줄면서 체중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하자 할머니도 걱정이 돼 동물병원을 찾은 것.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를 한 결과 자궁에 농이 차는 자궁 축농증으로 진단이 내려졌고 백혈구 수치도 9만 개를 훌쩍 넘겨 염증이 심각한 상태였다. 자궁 축농증은 암캐의 경우 적절한 어린 시기에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을 때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개는 사람처럼 폐경기가 없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발정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자궁경관의 수축력이 감소해 발정 후에도 경관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항문과 생식기 주변의 세균에 감염이 되어 자궁 내에 농이 차게 되는 것이다. '까미'가 살 수 있겠느냐는 할머니의 질문에 '백혈구 수치가 9만 개 이상인 경우는 심각한 염증 상태이기 때문에 독혈증으로까지 진행이 될 수 있다. 위험한 상태이지만 수술을 하지 않을 시에도 생명이 위험하다'고 답해드리고 조심스럽게 수술을 권했다.

'까미'는 12년 전 이 할머니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혼자 사는 할머니를 위해 자식들이 구해 준 개이다.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나 편찮으실 때나 동고동락한 가족이었다. 할머니가 귀가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았을 때도 위안이 돼준 '까미'였기에 '꼭 살려달라'는 말씀과 함께 수술을 부탁했다. 어려웠지만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까미'는 나이도 많고 염증이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취에서 회복되는 것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까미'가 깨는 데 시간이 걸리자 할머니가 무척 초조해하는 것 같아 안심을 시켜드려야만 했다. 잠시 후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났고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다행히 '까미'는 위험한 상태를 넘겼고, 다음 날 수술 후 처치를 위해 내원한 할머니는 본인이 병에서 회복된 것처럼 기뻐했다. 이런 일은 수의사에겐 가장 큰 보람이다.

최동학 대구시수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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