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곰탕 타령

굴비 등으로 포식 뒤 나주곰탕…'제 맛 못 느껴'

곰탕 먹으러 나주에 간다. 첫 문장을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엄청 호사스러운 사람 같다. 뭔 할 일이 그리도 없어 곰탕 한 그릇 먹으러 그 먼 곳까지 가겠는가. 그건 거짓말이다. 그동안 전라도 쪽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줄곧 바닷가와 섬만 찾아다녔기 때문에 내륙에 숨어 있는 나주는 항상 지나치고 마는 선택받지 못한 곳이었다.

이번 법성포 굴비를 겨냥하여 길을 떠나면서 나주를 중간 기착지로 정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자칫 했으면 '간다 간다' 하고 벼르다가 세상 뜰 때까지 나주곰탕 맛을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주를 벗어나자마자 고민이 생겼다. 점심을 법성포 굴비정식으로 정하고 보니 곰탕이 밀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곰탕부터 먼저 먹고 법성포로 들어가자니 난생처음으로 상견례하는 품격 높은 굴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도반들의 차 내 긴급회의가 열렸다. 제대로 차린 굴비정식을 맛보려면 1인당 최하 2만원은 되어야 할 것 같고, 곰탕은 6천~7천원 선이니 비싼 것부터 먼저 먹고 싼 것은 뒤로 미루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제대로 차린 굴비정식은 내겐 처음이었고 도반들도 입맛만 쩍쩍 다시는 걸 보면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듯했다. 신라의 육부 촌장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처럼 우리 다섯 촌장들의 화백회의도 전원 찬성으로 옛 어른들의 뜻을 그대로 따랐다.

날씨가 흐려 하늘 색깔을 닮은 바다 빛은 역시 진회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굴비정식에 소주 한 잔씩을 걸치고 난 후 도반들의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는 마치 참조기 몸통에서 비치는 누른 기운처럼 보였다. 황인종의 홍조 띤 얼굴색을 제대로 감별해 보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굴비정식을 먹었든 술을 마셨든 간에 나주곰탕 먹기는 오늘 내로 반드시 해야 할 숙제였다. 법성해안도로를 타고 달리고 또 달려 나주로 들어섰다.

낯선 곳에서의 음식점 정하기는 떠도는 소문과 신발 숫자를 보고 정하면 제대로 들어맞는다. 이곳 곰탕집들은 어느 것 하나 원조나 명인 아닌 집이 없고 텔레비전에 방영 안 된 집이 없는 듯했다. 나주곰탕 하얀집(061-333-4292)으로 들어갔다. 주방이 개방되어 있었고 일손 도우미들도 친절했다. 우린 2만원짜리 수육 한 접시와 곰탕 한 그릇만 시켜 맛만 보기로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경상도에서 왔군요" 하면서 우리의 배부른 사정을 모르고 수육을 덤으로 얹어 주면서 "많이 잡숴요" 한다.

맛은 괜찮은 편인 것 같은데 '정확한 맛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굴비에 홍어삼합, 꽃게장, 뱅어조림, 장어구이 등 남도음식을 섭렵하다시피 했으니 혀가 맛을 느끼기엔 너무 늦었나 보다. 구라파의 일류 소믈리에들은 어떤 와인이라도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면 "이건 몇 년도산 보르도, 어느 지방, 어느 샤토에서 만든 것"이라고 맞혀낸다는데 나는 별것 아닌 곰탕의 "맛있다, 없다"조차 가늠하지 못하니 천날 만날 허방만 딛고 살아 왔나 붸.

수육 한두 점과 국물 두어 숟갈로 나주곰탕을 먹어 보는 원을 풀긴 풀었다. 그런데 소원이 풀렸으면 개운해야 할 텐데 계속 찜찜하다. 배부름의 고역이 배고픔의 고통보다 아픔은 덜하겠지만 그것 역시 만만찮다. 옆 자리 친구의 답안지를 커닝하여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어느 누가 나주곰탕을 이야기하면 끼어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온전한 나의 실력도 나의 입맛도 아니었다. 재도전이란 낱말이 생각났다. 이날 먹은 나주곰탕의 맛을 내 기억의 탱크 속에서 완전 삭제로 지워 내야겠다. 만일 다시 기회가 온다면 1박 2일 일정으로 나주에 눌러 앉아 곰탕은 물론 영산포 주변의 홍어와 구진포 나루의 장어 등을 두루 맛볼 작정이다. 빈 시간에는 다야뜰 나루터로 나가 영산강 황포 돛대가 달린 유람선도 타 봐야지.

그날이 올 때까지 꾹 참고 곰탕 타령은 하지 않아야겠다. 형편이 닿지 않아 나주에 갈 기회가 영영 없으면 고향 장터의 기역자 목판에 쪼그리고 앉아 소머리국밥에 국수 타래를 말아 먹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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