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45)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 법학계를 대표하는 '파워 라이터'로 통한다. 그가 2004년 펴낸 '헌법의 풍경'은 청소년들과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한 번쯤 읽어야 하는 교양서로 꼽힌다. '헌법의 풍경'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권장 도서로 추천한 책이며, 'TV 책을 말하다' 올해의 책과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추천 청소년 도서로 선정되면서 김 교수에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저술상을 안겼다.
김 교수의 글은 쉽게 읽힌다. 그리고 유쾌하다.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편하게 풀어내는 글쓰기 방식 때문에 그는 따뜻한 법학자, 유쾌한 에세이스트로 불린다. 김 교수는 언론사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몇 주 전 새책('욕망해도 괜찮아')을 출간한 덕분에 인터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
김 교수는 2002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깨뜨린 책('칼을 쳐서 보습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8권(개정판 포함)의 저서를 출간했다.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과 '불량 사회와 그 적들' 등 공동 저서를 합치면 그가 펴낸 책은 10권을 훌쩍 넘는다.
책을 통해 다룬 주제도 다양하다. 2010년 출간한 '불편해도 괜찮아'에서는 청소년'동성애자'장애인들의 인권 문제를 다뤘다. 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작은 교회가 아니라 큰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에 일침을 가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와 검사 출신으로 사법부의 부조리를 지적한 '불멸의 신성가족'도 펴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김 교수가 법과 국가 권력, 인권 등을 넘나들며 책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글을 쓰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초'중학교 때 각종 글짓기상을 휩쓸 정도로 글 쓰는 재주가 남달랐던 김 교수는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것이 좋아 글을 쓰다 보니 책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책을 낸 계기는 '의문'입니다. 의문을 갖게 된 문제가 있으면 제가 먼저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한 것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이것을 엮어 책으로 내는 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저자의 입장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출발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고 그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책을 낸 것이 김 교수의 출간 방정식인 셈이다.
김 교수가 글쓰기를 탐닉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글쓰기를 통해 학교 밖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인문'사회도서 시장에서 교수들의 책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는 책보다 논문의 가치를 더 높이 사는 교수 평가시스템 때문입니다. 많은 노력을 들여 책을 펴내도 인정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아 교수들이 책을 잘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교수들은 교수들만의 세상에 살게 되었고 시민들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색계'를 탐하다
김 교수는 영화 '색계'를 전체적으로 다섯 번, 부분적으로 스무 번쯤 봤다고 했다. 그가 색계를 많이 본 이유는 빼어난 작품성 때문이다. 김 교수가 색계에서 주목한 것은 욕망과 규범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억누르고 사는 욕망을 주제로 그는 지난달 '욕망해도 괜찮아'를 출간했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김 교수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창시절 김 교수는 한마디로 '범생'(모범생)이었다.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 덕분에 그는 고려대 법대에 들어갔고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도 됐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이다.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김 교수는 욕망이라는 코드를 통해 우리 사회 다양한 모순과 문제들을 짚어냈다. 하지만 이면에는 한 번쯤 일탈해 보고 싶었지만 모범생에게는 금기의 대상이었던 자신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창비문학블로그에 '색계'(色戒)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다. '색계'에는 자신의 색(色)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정한 계(戒)의 범위를 넓혀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그는 올해부터 '김두식의 고백'이라는 타이틀로 인터뷰(한겨레신문)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가 욕망을 탐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은 모두 색계와 맥이 닿아 있다. 김 교수에게 출구를 찾지 못해 비틀리고 왜곡된 욕망은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욕망을 억누르기만 하면 개인과 사회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갑니다. 억눌린 욕망은 타인의 스캔들에 열광하는 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하나의 스캔들이 터지면 마치 자신의 욕구 불만을 표출하듯 마구잡이로 돌을 던집니다. 끊임없이 돌을 던질 상대를 찾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고백하고 감추어 두었던 욕망을 꺼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 교수에게 색계는 인생의 화두다. 자신이 몸담은 교회와 사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한 것도 모두 자신의 경계를 넓히기 위한 일종이 몸짓이었다. 또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부인 뒷바라지를 위해 기꺼이 검사 생활을 청산한 것도 스스로의 틀을 깨기 위한 삶의 연장 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아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돌볼 처지가 아니어서 딸은 할머니가 양육을 하게 되었죠. 검사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는데 가족마저 뿔뿔이 흩어지면서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직을 한 뒤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2년간 전업주부로 살았습니다."
김 교수는 1년 만에 '주부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전업주부 생활은 생각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업주부 생활은 자신의 인생 영역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틀을 깨고 주부라는 새로운 경계로 들어선 이후 저도 몰랐던 제 자신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주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깨닫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인생의 지평은 모험을 하는 것만큼 넓어집니다."
◆영화는 훌륭한 학습 교재
김 교수는 영화광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말의 명화'를 빼놓지 않고 볼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다. 그에게 있어 영화는 단순한 영상예술이 아니라 지식을 쌓는 좋은 수단이다. 그는 역사도, 외국어도, 사랑도, 인권도 모두 영화에서 배웠다고 했다. "2시간 정도 투자해서 영화만큼 즐겁게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어릴 때 영화를 본 뒤 영화에 나오는 사건이 궁금하면 책을 찾아 확인을 했습니다. 그렇게 쌓은 지식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또 미국으로 갈 때 영어를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주부 생활을 할 때 비디오를 많이 봤는데 미국 비디오니까 당연히 자막이 없었죠. 비디오를 틀어 놓고 무작정 따라하면서 영어를 익혔습니다."
그는 비디오를 통해 다진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1999년 코넬대 대학원에 진학해 법학 석사까지 받았으며 80여 편의 영화'드라마를 인용해 인권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책 '불편해도 괜찮아'도 펴냈다.
김 교수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도 영화를 교재로 활용하고 있다. "가끔 영화를 활용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영화에는 인간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와 지식이 녹아 있습니다. 영화가 좋은 학습자료인 셈이죠.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인간의 문제와 지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김 교수에게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법학자이자 영화광의 입장에서 '부러진 화살'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영화로 사실 관계를 명확히 따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극화되는 과정에서 사실의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부러진 화살'을 통해 국민들이 사법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들이 사법부에 불신을 갖고 있는 만큼 관계자들은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파워 트위터'
김 교수는 트위트 스타다. 시사 쟁점에 대해 촌철살인을 하는 논객이기 때문이다. 그는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이 불거졌을 때 트위트에 "조폭이 채무자에게 '딸이 참 예쁘더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연수원 8년 선배 판사가 전화해서 자기 아내와 관련된 사건을 묻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전문용어로 앞의 것을 공갈, 뒤의 것을 청탁이라고 합니다"라고 올려 화제가 됐다.
김 교수의 트위트 팔로우는 현재 2만8천여 명이다. 법학자로는 국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숫자다. 그래서 그는 안철수, 조국 교수 등과 함께 종종 멘토로 거론된다. 하지만 김 교수는 멘토가 너무 많아 숨쉬기 힘든 상황이라며 멘토 열풍에 일침을 가했다.
"법학은 제가 가르칠 수 있지만 인생은 제가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안 됩니다. 저는 지금도 성장을 하고 있는 미성숙 개체입니다. 생각도 자주 바뀌고 때론 욕망에 사로잡히는 까닭에 18세 소녀와 저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장 깊은 진실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가장 추웠을 때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보통 두 번째로 추웠던 이야기를 합니다. 멘토는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멘토들이 넘쳐나는 것은 문제입니다. 마치 멘토가 모든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 줄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또 김 교수는 트위트를 비롯한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냥하고 동원을 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트위트에 남을 칭찬하는 글을 올리면 반응이 미지근합니다. 반면 남의 허물을 지적하는 글을 올리면 반응이 뜨겁습니다. 트위트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진정한 소통의 공간이 되려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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