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16년 만인 1991년에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해방전쟁의 영웅적인 투쟁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전사들을 모욕하는 소설이라는 비판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리고는 절판. 이 작품이 양지(陽地)로 나와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제대로 받은 것은 2006년이 되어서다.
작가 바오닌은 전쟁의 야만성, 폭력에 짓밟힌 사랑 등 제목과 같은 '전쟁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복원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베트남의 전쟁문학은 조국 통일과 민족 해방의 영광, 정의로운 항쟁, 구국의 의지 등을 노래한 것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세상에 나오는 것이 늦었다.
작가는 말한다. "내게 전쟁은 인생에서 접한 가장 커다란 비극이었다. 전쟁은 내게 결코 바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베트남, 한국,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이 서로를 죽이면서 흐르는 핏물로 강물을 만들었다. 어찌 이렇게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의 이런 생각이 작품의 바탕이다.
그리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 낌런의 말도 바오닌의 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됐다. "전쟁을 겪은 작가는 말이야, 전쟁 속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잔인한 폭력과 끔찍한 적개심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네. 물론 전쟁에 대해서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적개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해. 왜냐하면 전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곧 사랑과 인도적인 성품과 관용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전쟁에 관한 글은 곧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사랑할 나이에 전쟁을 해야만 했던 끼엔의 전쟁 비망록이다. 사랑과 이별하고 전쟁을 하며 보낸 10년. 바람처럼 흩어져 버린 10년, 그러나 '한평생보다도 긴' 10년의 이야기가 바로 '전쟁의 슬픔'이다.
이 소설은 전쟁터의 끔찍한 맨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작가 바오 닌은 전쟁에 대한 어떤 미화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살을 떨며 과장하지도 않는다.
열일곱 살 나이에 전쟁에 뛰어든 끼엔.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라면 끼엔처럼 전쟁에 나서지 않은 젊은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막 피어나기 시작한 프엉과의 첫사랑은 어쩌란 말인가.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대지를 할퀴며 인간의 영혼을 상처를 입혔다. 처절한 전쟁은 아군과 적군, 군인과 민간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구분없이 너무나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끼엔의 영혼은 전쟁 속에서 메말라 간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이 기억에서 저 기억 속으로 떠다녀야 했다. 벌써 몇 년째인가? 멀쩡한 정신으로도 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길 한가운데서 문득 길을 잃고 꿈속을 헤매기도 한다. (중략) 어느 날 밤에는 천장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기도 했다. 그 소리가 등골이 오싹한 무장 헬리콥터의 굉음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바오닌(Bao Ninh)은 1952년 베트남 중부 응에안 성 출신이다. 응에안 성은 호찌민 주석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본명은 호앙어우프엉이며, 필명은 선조들의 고향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이 이야기는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에 베트남인민군대에 자원입대했다. 3개월간 사격 등 군사훈련을 받고 이등병으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첫 전투에서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하여 5개월 만에 소대지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싸웠다.
'전쟁의 슬픔'은 바오닌의 첫 장편이다. 무려 1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베트남의 문학작품으로서는 기록이다. 1991년에 출간됐으나 2011년에야 비로소 베트남에서 가장 좋은 책으로 선정된 책이다.
바오닌의 한국 방문은 모두 네 차례 이뤄졌다. 첫 방문 때부터 작가와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소설가 김남일은 "전쟁만이 아는 슬픔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냈다. 기나긴 전쟁 기간 내내 끝없이 불안하고 불편한 잠을 자는 한 인간의 영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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