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시사 이슈를 거침없이 발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팟캐스트가 다양한 소재를 매개로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것저것 다루는 소재가 무궁무진해 총천연색 컬러 TV보다 더욱 컬러풀하다. 사람들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방송을 제작하며 팟캐스트 세상에 빠져들고 있다. 팟캐스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번쩍' 하고 등장하더니
팟캐스트(podcast)는 미국 IT기업 애플의 주력상품인 아이팟(ipod)의 팟(Pod)과 브로드캐스트(방송, broadcast)의 캐스트(cast)를 합친 단어다. 아이팟과 같은 휴대용 디지털 플레이어로 듣는 방송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2004년 영국의 기술 칼럼니스트 벤 헤머슬리가 처음 사용했다. 온라인에 접속한 사용자들은 파일 형태로 된 뉴스, 강의, 음악방송 등 각종 콘텐츠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등록하거나 내려받을 수 있다. 사용자들은 제작자이자 구독자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팟캐스트가 처음 시작된 때는 2009년 11월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아니었다. 대중들 사이에 팟캐스트가 유행하고, 사회적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말 이후부터다. 시사풍자 라디오방송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등장하고 나서다. 시사풍자 콘텐츠를 게재하는 인터넷 신문인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가 진행을 맡아 주 1회 방송을 시작, 올해 5월 마지막 주 기준으로 52회 분의 팟캐스트 콘텐츠를 쏟아냈다. 함께 출연한 시사평론가 김용민, 정봉주 전 의원, 주진우 시사IN 기자 등이 정치 토크쇼 형식을 앞세워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쏟아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8월 나꼼수는 미국 아이튠즈 팟캐스트 다운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팟캐스트가 유통되는 미국 팟캐스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결국 세계 1위를 기록한 셈이다. 그러자 이러한 온라인 팟캐스트 방송의 반란에 대해 지상파 라디오방송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부랴부랴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직장인 정현욱(31) 씨는 스마트폰으로 3가지 팟캐스트를 구독하고 있다. 하나는 첫회부터 빼놓지 않고 챙겨 듣고 있는 나꼼수다. "평소 시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나꼼수는 신빙성이 높든 적든 간에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민감함 시사 이슈를 마구 폭로하더군요. 기존 방송과 달리 사전심의 등 규제에서 자유로운 이점을 잘 살렸습니다. 저는 나꼼수에서 2가지 쾌감을 얻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나꼼수를 구독하는 사람들끼리만 고급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믿으며 느끼는 쾌감, 그리고 출연진의 유머와 재치 있는 입담이 주는 쾌감을요."
또 하나는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각각 5분씩 듣는 영어 회화 팟캐스트다. 정 씨는 "정기적으로 업로드되는 5분짜리 영어 회화 콘텐츠를 공짜로 다운로드받아서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매력"이라고 했다. 잠들기 전에는 음악방송 팟캐스트를 튼다. "이곳도 저곳도 유행하는 가요만 주야장천 트는 라디오와 달리 개인이 제작한 음악 방송에는 희귀한 곡이 종종 흘러나옵니다. 팟캐스트를 통해 마니아, 고수들의 선곡 실력을 엿볼 수 있어 좋아요."
정 씨의 사례에서 최근의 팟캐스트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 시사 이슈를 다루는 팟캐스트는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더불어 교육'강의 등 자기계발을 위한 팟캐스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점점 대중화되면서 팟캐스트는 개인들의 1인 미디어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 팟캐스트 순위 사이트인 팟빵(www.podbbang.com)의 올해 5월 기준 다운로드 순위를 살펴보자. '나꼼수'(1위), '뉴스타파'(2위), '이슈 털어주는 남자'(5위) 등 시사 이슈를 다루는 팟캐스트가 여전히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수능 강사 최진기의 인문학 특강'(8위), '정철의 영어가 터지는 비법'(16위), '5분 영문법'(27위) 등 강의 관련 팟캐스트도 최근 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팟캐스트 생태계의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의 재방송 콘텐츠다. 지상파 방송사 등이 방송 콘텐츠의 재활용 창구로 일찌감치 팟캐스트 서비스를 눈여겨봤기 때문. 하지만 최근 개인이 음악 등을 소재로 방송을 제작하며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전진희의 음악일기'(20위)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40위)를 이미 누른 상황이다. 개인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관심사를 공유하며 구독자들을 끌기도 한다. 한 예로 '나는 연애고수다'(33위)는 한 인터넷 사교클럽에서 제작하는 토크쇼 형식의 라디오 방송이다.
팟캐스트를 구독만 하던 정현욱 씨도 퇴근 후에 자신이 진행하는 음악 방송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라디오 DJ가 꿈이었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도 음악을 주력 콘텐츠로 삼았다.
제작은 간단하다. 먼저 콘텐츠를 녹음을 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에 장착돼 있는 마이크 혹은 가정용 마이크와 간단한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된다. 제작한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데는 약간의 비용이 든다. 매주 30분 정도 분량의 콘텐츠를 파일로 업로드하려면 한 달에 3만~4만원 정도의 사용료를 온라인 호스팅 서비스 업체에 내야 한다.
다운로드하는 구독자가 많아질수록 데이터 사용량이 많아져 비용도 늘어난다. 정 씨는 "이 정도 비용은 취미 활동을 하며 재미를 얻는 데 기꺼이 쓸 수 있다"며 "내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비용도 늘어나는 것이니 오히려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애플 아이튠스에 가입하고 간단한 프로필 작성 후 등록을 마치면 된다. 자신만의 팟캐스트 방송 제작자가 되는 순간이다.
실제로 개인 방송 제작자가 팟캐스트의 저변을 다지고 있다. 팟빵에 따르면 이달 31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팟캐스트는 모두 3천971개. 생태계라기보다는 은하계에 '반짝반짝' 뜬 별들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지역' 다루는 팟캐스트
최근 뜨는 팟캐스트가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대표를 포커스에 맞춘 '나는 친박이다'(이하 '나친박')라는 프로그램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커스에 맞춘 '나꼼수'와 유사하다. 최근 박 전 대표가 대권 주자로 떠오르면서 '나친박'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팟빵의 5월 현재 다운로드 순위 6위를 차지했을 정도.
그런데 '나친박' 방송을 들으면 대구 냄새가 풍긴다. 일단 구수한 대구 사투리로 진행된다. 진행자가 대구 출신인 남태우 대구시네마테크 대표와 여론조사 전문가 이쌍규 씨이기 때문. 더구나 대구에 사는 관련 인물들이 종종 출연하고, 다루는 내용도 영남대 문제, 정수장학회 등 박 위원장 내지는 대구 지역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를 전국 각지의 구독자들이 다운로드해 듣는다.
지역 프로야구 구단과 팬들을 연결해 주는 팟캐스트도 인기를 얻고 있다. '롯데 마니아들의 수다'는 부산MBC의 김동현 아나운서, 최효석 해설위원 등이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의 경기 중계방송에서 하지 못한 뒷이야기와 롯데 소속 선수와 코치 등 관계자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 등을 수다로 풀어내는 라디오방송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벌써 다운로드 순위 20위권 안에 진입했다.
이렇듯 지역발 콘텐츠가 팟캐스트를 통해 전국구로 유통되며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참언론시민연대 허미옥 사무국장은 "서울이나 수도권 사안만을 중심으로 다루던 기존 대중매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라 의미가 있다"며 "지속적으로 지역 사회가 갖고 있는 이슈 및 소재와 연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해야 이러한 팟캐스트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팟캐스트의 미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팟캐스트의 기능은 특별하다.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강길호 교수는 "팟캐스트가 현재 방송, 신문 등 전통적인 대중매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려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대중매체가 최근 국민들에게 정보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불신을 심어주는 등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그에 반비례해 팟캐스트가 대안매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몇몇 팟캐스트 콘텐츠는 구독자가 수백~수천만 명에 이를 정도로 기존 대중매체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팟캐스트가 다시 변화의 시기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교수는 "근본적으로 팟캐스트는 대중매체가 될 수 없는 특성을 가졌다"며 "전통적인 대중매체가 제대로 작동하면 자연스럽게 대안매체 역할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팟캐스트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규모 매체로서 분명 강점이 있다는 것. 강 교수는 "제작이 쉽고, 구독 역시 가볍고 편리한 팟캐스트는 다양한 종류의 소규모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미래 사회에 안성맞춤 소통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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